북한의 성인 남녀간에 반말이란 없다. 대학생들끼리도 마찬가지다. 같은 학교, 같은 대학의 동기생들끼리도 남녀간에는 "야, 자"하며 허물없이 지낼 수 없다. 여자가 남자에게 반말을 쓴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대신 남자는 여자에게 슬그머니 말을 놓아도 별로 흉이 되지 않는다. 상급생의 경우도 여자선배가 남자후배에게 이름을 부르거나 말을 놓을 수가 없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뒤에 "동무"를 붙여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웃에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 할지라도 일단 대학이나 사회에서 만나면 사적인 관계는 청산해야 한다. 여자가 남자에게 하대를 하면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된다. 평양의 명문대학에서조차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대들다가 사정없이 얻어맞는 일이 흔히 일어나고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는 것이 평양외국어대학 출신의 탈북인 이철진(29)씨의 설명이다. 남자끼리나 여자끼리는 "나이"가 호칭과 관계를 결정하고, 형님, 언니, 누님 등으로 부른다.

남한에서처럼 입학연도(학번)나 군번을 따져 관계를 설정하는 일은 없다. "선배"도 호칭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부부간에는 점잖은 사람들은 서로 말을 높여 공대하기도 한다. 여기서처럼 "여보, 당신"이라고 서로 부른다. 아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남편을 지칭할 때는 "세대주"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한에서도 "우리집가장"이라고 부르는 예가 있지만 훨씬 통상적이다. 남편은 아내에 대해서는 "내 처, 우리집사람"이라고 한다. 아내가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일은 없다. 아이들도 부친에 대해 "아빠"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자신의 아내에 대해 "간나"라고 부르며 혹독하게 대하는 경우는 북한사회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일이다. 사회질서가 흐트러진 최근은 한결 심해졌다고 한다. 북한은 46년 "북조선 남녀평등권에대한법령"을 제정하는 등 남녀평등을 제도적으로 실현했다고 주장하고는 있다. 제도는 급진적이었지만 일상생활속에서 봉건적인 관계는 혁파되지 못한 셈이다. 호칭뿐만 아니라 옷차림, 행동거지에서도 여성에 대한 제약은 대단히 심하고 여권운동이 불가능한 북한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우위는 사회전반에서 철저하고도 당연시되고 있다.

/김미영기자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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