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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간첩 못 잡는 국정원… ‘간첩 천국’ 되기 전에 대공수사권 원위치해야

기사승인 20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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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두 가지 직업은 매춘과 스파이라고 한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 그들의 지도자 여호수아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2명의 첩보원을 파견했는데, 이들은 당시 매춘부였던 라합의 집에 갔다.

매춘과 스파이를 인류와 함께 시작된 유서 깊은 직업으로 끄집어내는 이유는 21세기에 간첩이 있냐고 묻는 이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간첩은 싫든 좋든 인류와 함께 존재해왔고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분단 한반도에서 간첩은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잠복과 노출을 반복할 것이다.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기부가 배포한 반공 포스터에 등장하는 간첩은 새벽에 이슬을 맞고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단파 방송을 듣는 사람 등 특이한 행색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간첩의 모습도 흐르는 세월처럼 변해갔다.

20세기 간첩은 평양에서 특수 교육을 받은 공작원이 직접 남한으로 내려오는 직파(直派) 행태였다. 말투나 행색을 완전히 바꿔 서울에서 활동할 수 있게 했다. 영화 007 수준의 교육을 받고 해안가에 상륙하여 평양에서 점찍은 친북 좌경 인사들을 접촉해 지하당 구축 명령을 수행했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1990년대 대표적인 사례는 전설적인 할머니 간첩 리선실이다. 제주 출신의 리선실은 4·3 사건 이후 남로당에 가입하고 1950년 4월 한국전쟁 직전 월북했다. 이후 수차례 서울에 나타났고 일본을 오가며 간첩 활동을 했다. 1990년 북한으로 돌아갈 때까지 남한의 지하당 구축 공작을 주도했다. 이후 1991년 김일성과 재독 친북 음악가 윤이상의 면담에 배석하는 등 정치국원 서열 22위에 올라 북한에서 실세로 불렸다. 2000년 8월 사망한 후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21세기 들어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 전술도 변신을 시도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평양 스타일 간첩들이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정보기술(IT)의 한계로 서울에서 활동하기에는 어설펐다. 남한의 친북 인사를 육성하는 ‘자생 간첩’ 공작으로 전환하였다. 국내 자생·토착 간첩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한 배경이다. 과거 동독도 분단 초기에는 간첩을 직파하다가 서독의 요인(要人)을 포섭하는 우회 전략으로 첩보 및 공작 활동을 수정했다. 평양 통전부는 남측의 반정부 및 좌경화된 세력을 예의주시하다가 제3국에서 포섭해 무인기 조종하듯 원격으로 관리한다. 남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소프트한 위장 활동을 전개한다. 민족 공조라는 감성적인 구호와 연계된 ‘문화’를 내세워 남한 인사를 포섭하였다. 2015년 문화교류국으로 간판을 바꿔 달은 이유다.

통상 자생·토착 간첩은 3단계 과정을 거치며 반정부 투사로 변신한다. 잘못된 국가관과 왜곡된 영웅 심리 등으로 남한 정부를 부정하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게 첫 단계다. SNS 등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과 활동을 공유하면서 포섭 대상이 된다. 2단계로 북측의 포섭 공작에 걸려들어 남북 문화 교류라는 명목으로 제3국에서 회합을 제안받고 비행기를 탄다. 제3국에 가서 북한 공작원들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향응과 공작금을 받으면서 코가 단단히 꿴다. 김정은에 대한 충성 결의문을 작성하고 평양의 지시대로 움직일 것을 서약한다. 국내로 복귀하여 노조 및 시민단체 등과 연계하여 지하조직을 결성하면서 고정간첩으로 변신한다.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김명성은 2016년 창원 총책을, 2017년엔 제주 총책을 각각 동남아에서 접촉해 지하조직 건설을 지시했다. 이후 ‘윤석열 규탄’ ‘민노총 침투·장악’ 같은 지침을 하달했다. 진보정당 간부는 2017년 중국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제주에 ‘ㅎㄱㅎ’이라는 지하조직을 만들고 농민 단체 등과 함께 북측 지령을 받아 활동했다. 이들은 베트남 하노이와 캄보디아 프놈펜 등지에서 리광진 공작조를 만나 공작금을 수령하는 한편 암호화 프로그램인 ‘스테가노그래피’ ‘사이버 드보크’ 등을 교육받고 국내로 돌아와 지령과 보고를 주고받았다.

마지막 3단계에는 단순히 국내 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전달하는 하급 수준에서 벗어나 노조 및 정치권 등의 간부로 신분을 세탁해 거점을 구축하고 각종 국내 정치에 본격 개입한다. 김정은을 ‘총회장님’ , 남(南) 조직을 ‘이사회’로 지칭하며 위장한다. 보수 갈등 댓글 팀을 운영하고 유투버 고발전도 시도한다. 평양의 ‘깨알 지령’을 받아 핼러윈 참사 땐 분노를 분출하라는 등 국내 문제는 물론 한미 연합 훈련 반대는 단골 메뉴이며 반일 유언비어 등 외교에도 개입한다. 2006년 일심회의 조직원은 중국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뒤 정치권에서 수집한 국가 기밀을 북측에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그럴 듯한 명함을 사용하고 괴담으로 언론을 현혹하기 때문에 수사가 어려운 ‘직장인 간첩’이다.

2023년 간첩 수사는 대공수사권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시사한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을 간첩 수사나 대북 정보 수집 기관이 아닌 남북 대화 창구로 변질시켰다. 지난 정부 국정원은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만 매달렸다. 2011~2017년 26건이던 간첩 적발 건수는 문재인 정부 때 3건으로 급감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북한의 은밀한 손길이 제도권 노조에까지 미치는 등 간첩이 활개를 쳤지만, 이를 색출해 내기는커녕 수사를 무마한 정황도 드러났다.

문 정부는 2020년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내년에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독점하는 근거다.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을 앞두고 국정원은 연말까지 검경과 대공합동수사단을 상설 운영하기로 했다. 국정원은 합수단을 통해 자신들의 대공 수사 기법을 경찰에 공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임시기구인 대공합수단은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년이면 간첩이 활개 치는 세상이 올 것이다. 합수단이 우리 안보를 지키는 대책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간첩의 글로벌 활동 행태를 간파하지 못한 대응책이다. 북한 직파(直派) 공작원과 토착형 고첩의 접선 무대가 제3국으로 확대되었다. 세계 정보기관은 그들만의 정보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 재외 공관에 근무하는 경찰 영사들은 교민과 해외여행객 보호 업무로도 일이 벅차다. 간첩 수사 여력도, 국제 공조 네트워크도 부재하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경찰로 대공수사권을 이양했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역설적으로 국정원의 대공 수사를 차단해 북한 공작원들이 국내 정치에 개입할 여지가 생겼다.

다음은 간첩 수사의 장기성과 익명성을 외면한 졸속 대책이다. 21세기 자생 간첩은 국내 기반을 두고 활동하기 때문에 심증을 넘어 물증을 확보하는 데 5년이 걸린다. 강산이 변하는 10년 동안 인내심을 갖고 수사할 조직은 현재 국정원밖에 없다. 수사 보안과 전문성은 분단과 함께 시작된 북한의 대남 공작 기법을 간파하고 대응한 유구한 역사에서 비롯됐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정보부의 태생적 기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경찰청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과도기적으로 경찰과 국정원이 합동수사단을 만들어 주요 사건 몇 개를 같이 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휴민트(인적 정보) 등 수십 년간 축적된 무형의 정보 자산이 하루아침에 새벽 배송처럼 전달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공수사권 이양은 경찰이 스스로 요구한 사항이 아니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밀어붙인 것이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저서 ‘한 중앙정보부 분석관의 삶’에서 “김정일은 안기부를 고사시키지 않고는 적화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역설했고 아들 김정은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토로했다. 세계 어디에도 간첩이 활개 치도록 내버려 두는 나라는 없다. 적국은 물론 우방국과도 대화하면서도 정보기관은 치열하게 스파이와 전쟁을 치른다. 그게 정상적인 나라다. 구약성경의 교훈을 새겨야 한다. 간첩 천국을 막기 위해서는 내년 총선 이후 국정원법이 재개정돼야 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前 국가안보전략연 @chosun.com

<저작권자 © NK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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