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이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란 법을 만장일치 채택했다. 김정은 등 수뇌부가 공격받을 경우 자동으로 핵 공격을 가하도록 법조문에 명문화한 것이 골자다. 법은 ‘핵무기의 사용 조건’으로 5가지를 적시했다. 북한에 대한 핵무기·대량살상무기 공격이나 지도부에 대한 핵·비핵 공격이 감행·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이다. 공격이 의심만 돼도 핵 타격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미가 아무 이유 없이 북을 먼저 공격할 리도 없지만, 정찰위성 하나 없는 북한이 무슨 수로 공격 임박 징후를 알아낸단 말인가. 김정은의 불안이나 피해망상만으로도 핵을 쓸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김정은은 핵 무력 법제화에 대해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 놓은 데 중대한 의의가 있다”며 “핵보유국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이 됐다”고 했다. “백날, 천날, 십 년, 백 년 제재를 가해보라.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며 “비핵화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 “핵을 대부(貸付)로 개선된 경제 생활 환경을 추구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1만9000여 자에 달하는 연설문의 약 40%가 비핵화를 안 하겠단 얘기였다. ‘비핵화 절대 불가법’을 만든 것이다.

애초부터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을 리 없었다. 2018년 초 돌연 평창올림픽에 참가한다며 평화 공세를 편 것도 고강도 제재로 조여드는 숨통을 틔우고 핵무력을 고도화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며 전 세계를 속이고 트럼프에겐 보증까지 섰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북이 미사일을 다시 쏘는데도 “모라토리엄은 지키지 않느냐”며 미국에 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그러다 임기 말인 지난 3월 더 강력해진 ICBM이 솟아오르는 걸 지켜봐야 했다.

김정은의 쇼에 놀아난 민주당은 ‘핵 선제 타격’ 법제화 소식이 전해진 지 사흘이 지나도록 공식 논평 하나 내지 않고 있다. 어떻게 제1 야당이라고 할 수 있나. 이재명 대표가 뒤늦게 “제재·압박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대북 포용과 대화·협력 주문하며 ‘강한 유감’을 표한 게 전부였다. ‘가짜 평화 쇼’로 핵·미사일 고도화의 시간을 벌어준 것도 모자라 아직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믿는 건가. 이게 문 정권과 민주당이 5년 내내 강행했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결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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