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가 국민을 북한 손에 피살되도록 조력하거나 방치했던 두 사건으로 인해 국내외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나는 2019년 11월 귀순 의사를 밝힌, 헌법상 우리 국민인 탈북 어민 2명을 강제로 북한 당국에 인도해 처형당하게 한 사건이다. 정부는 그들이 선상 집단 살해범이라 주장했으나 그것이 강제 북송을 합리화할 수는 없고, 더욱이 그들의 어선에선 흉기도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2020년 9월 북한 해역에서 표류 중인 어업 지도 공무원을 여러 시간 망원경 가시거리에 두고도 아무런 구조 노력 없이 방치해 사살당하게 한 사건이다. 구조대 투입까지는 기대할 수 없더라도 그 흔한 대북 전통문이나 해상 공용 무선통신 한번 시도하지 않았다.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는 이를 월북 사건으로 조작하려 했다.

지난 2019년 11월 7일 경기 파주 판문점에서 촬영된 탈북어민 강제북송 당시 사진. 탈북 어민들이 북송되지 않기 위해 버티는 모습이 담겼다./통일부
 
지난 2019년 11월 7일 경기 파주 판문점에서 촬영된 탈북어민 강제북송 당시 사진. 탈북 어민들이 북송되지 않기 위해 버티는 모습이 담겼다./통일부

국민 생명에 대한 가혹한 직권 남용과 직무 유기, 북한과 중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비인도적 대국민 범죄 행위, 선진국 같으면 정권 붕괴나 내각 총사퇴가 일어났을 만한 야만적 국가 행위가 백주에 이 나라에서 일어났다. 더욱이 두 사건 모두 국가 최고 권부의 지휘 아래 시행된 정황이 짙고, 군·경.공직자 수십 명이 자의로건 타의로건 관여된 사건이었다.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이런 행위는 아무리 그럴싸한 정치적·정책적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명백한 범죄 행위다. 직간접으로 그에 관여한 공직자들도 적극 가담자건 소극적 순종자건 그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런 부끄러운 사건의 은폐된 실체가 많은 증언과 증거로 밝혀지고 유엔, 외국 정부, 국제 인권 단체 등의 비판이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사건 관계자와 후견 세력 중 속죄하거나 반성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흉악범’ ‘귀순 의사 부재’ ‘남북 관계’ ‘통치 행위’ 등 터무니없는 논리와 독설로 사건을 합리화하려는 목소리 일색이다. 어쩌다 이 나라가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우리나라가 비록 아직 선진국은 아니나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지난 5년 사이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는 북한과 중국에 굴종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어울리더니 그들의 반문명 바이러스에 감염돼 영혼과 도덕성마저 그들과 동질화된 것일까.

이 두 사건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첫째, 훗날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 큰 스캔들로 부상하리라고 당시부터 다들 예상했던 사안이다. 2018년 12월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초계기와 갈등까지 빚으면서 독도 동북방 200㎞ 대화퇴 어장으로 황급히 달려가 북한 어선 1척을 구조해 북측에 송환했다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의 진실도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둘째, 두 사건은 북한에 대해 응당 해야 할 요구도 거부도 한마디 못 한 채 그저 평양 눈치만 살피던 문재인 청와대의 말 못 할 속사정이 여실히 반영된 사안이다. 셋째, 두 사건과 관련된 한국 정부 중추부의 기괴한 판단과 행적은 어떤 비밀스러운 비공식 대북 소통 채널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청와대 안보실을 주축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 결정 구조상 이 사건들의 중심에는 항상 청와대가 있었지만, 국정원, 통일부, 국방부의 능동적 또는 수동적 협조와 묵인 없이 시행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 대북한 업무의 중책을 담당하는 통일부와 국정원이 그 과정에서 올바른 기능을 수행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통일부는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의 월북 조작에 협력했고,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에서는 국정원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한 역할 수행의 배경이 무엇이었건, 청와대의 의지나 지시가 휘하 부처의 일탈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통일부와 국정원이 그간 보여 온 유화적 대북한 행태는 조직 논리의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북한의 환심을 사서 회담과 협력 사업 하나라도 더 챙겨야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는 통일부에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의연한 대북 정책을 기대할 수는 없다. 국정원은 더 심각하다. 대북 정보 수집과 감시, 방첩을 본업으로 해야 할 정보기관이 일선에서 대북한 연락과 협상, 남북 정상회담까지 관여하느라 평양의 심기에 연연하다 보니, 본연의 대북 감시와 방첩 업무는 설 땅이 없다. 일부 기능을 타 부처로 이관하건 조직을 분할하건, 상충하는 대북 업무 기능은 차제에 철저히 상호 분리하고 차단하는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