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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태운 수레 밀고… 평양주재 외교관들 北탈출 작전

기사승인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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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북 러시아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이 '철길 수레'를 이용해 귀국하는 모습. 코로나로 인한 국경 차단으로 이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러시아외무부 페이스북
주북 러시아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이 '철길 수레'를 이용해 귀국하는 모습. 코로나로 인한 국경 차단으로 이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러시아외무부 페이스북

러시아 외무부는 26일 평양 주재 러시아 외교관 8명이 전날 가족들과 함께 귀국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관련 사진·동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엔 블라디슬라브 소로킨 3등 서기관 일가족 6명이 ‘레일 바이크’처럼 철로 위를 움직이는 대형 수레를 밀면서 북·러 국경을 넘는 장면이 담겼다. 성인 3명이 수레를 밀고 어린이 3명은 수많은 여행 가방과 함께 앉아있는 모습이다.

러시아 외무부에 따르면 이들은 기차로 32시간, 버스로 2시간 이동해 국경 지대에 도착했다. 해당 페이스북 게시물엔 “열차로 32시간 걸린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댓글도 달렸다. 북한 철도는 노후화가 심해 ‘거북이 운행’(시속 40㎞ 수준)을 하는 데다 정전이 잦다. 평양~청진 구간이 28시간 걸린다.

라선시에 도착한 이들은 러시아 땅을 밟기 위해 철길용 수레를 1㎞가량 밀어야 했다. 국경폐쇄로 북·러 간 교통수단이 모두 끊긴 탓이었다. 두만강 북·러 국경을 넘는 순간엔 환호성을 질렀다. 러시아 외무부는 “소로킨 서기관이 ‘주력 엔진’ 역할을 했고 최연소 여행객은 그의 3살 딸이었다”며 “국경이 폐쇄된 지 1년이 넘고 여객 통행이 중단되면서 귀국길이 길고도 험난했다”고 했다.

주북 러시아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이 '철길 수레'를 이용해 귀국하는 모습. 코로나로 인한 국경 차단으로 북·러 간 모든 교통수단이 끊긴 바람에 이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러시아 외무부 인스타그램
주북 러시아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이 '철길 수레'를 이용해 귀국하는 모습. 코로나로 인한 국경 차단으로 북·러 간 모든 교통수단이 끊긴 바람에 이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러시아 외무부 인스타그램

코로나 사태로 국경 봉쇄가 장기화하며 외국 공관들의 ‘평양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다. 생필품의 씨가 마를 수준으로 경제난이 극심해진 탓이다. 앞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러시아 대사는 지난 8일 언론 인터뷰에서 “밀가루, 설탕 등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사기 어려워졌다”며 “대사관 직원들은 서로 옷과 신발을 교환하며 자녀들에게 입히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수교국은 161곳이지만, 평양에 상주공관을 두고 있는 나라와 국제기구는 30곳 안팎이다. 이 가운데 영국·독일 등 서방 공관들은 작년 상반기에 문을 닫았고, 최근까지 공관을 유지해온 국가는 10곳 안팎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마체고라 대사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평양에 체류 중인 대사들이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회동한 소식을 전하며 중국·베트남·쿠바·시리아 등 동료 대사 8명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에 체류하는 외국 대사 9명이 지난 19일 평양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회동했다. 이 사진을 공개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러시아 대사는 "(동료 대사들이) 현재 상황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이로부터 6일 뒤 러시아 대사관 직원 8명이 평양에서 철수했다. 코로나 유입을 막기 위한 북한 당국의 국경봉쇄가 1년 넘게 이어지면 30곳 안팎이던 평양 주재 외국 공관들은 현재 10곳 안팎으로 줄어든 상태다. 남은 공관들도 규모를 줄이거나 철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왼쪽부터 베트남, 라오스, 팔레스타인, 중국, 인도네시아, 러시아, 쿠바, 시리아, 인도 대사. /주북 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
북한에 체류하는 외국 대사 9명이 지난 19일 평양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회동했다. 이 사진을 공개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러시아 대사는 "(동료 대사들이) 현재 상황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이로부터 6일 뒤 러시아 대사관 직원 8명이 평양에서 철수했다. 코로나 유입을 막기 위한 북한 당국의 국경봉쇄가 1년 넘게 이어지면 30곳 안팎이던 평양 주재 외국 공관들은 현재 10곳 안팎으로 줄어든 상태다. 남은 공관들도 규모를 줄이거나 철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왼쪽부터 베트남, 라오스, 팔레스타인, 중국, 인도네시아, 러시아, 쿠바, 시리아, 인도 대사. /주북 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

특히 마체고라 대사는 이 모임에서 대사들이 “현재 상황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했다. 이로부터 6일 뒤 러시아 대사관 직원 8명이 철수한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국경 봉쇄가 계속될 경우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나머지 공관들도 규모를 줄이거나 운영을 잠정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탈북 외교관 출신의 고영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도 평양 주재 외교관들은 외교단 상점에서 생필품을 구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며 “지금은 국경 봉쇄로 생필품 조달이 완전히 끊겨 기본적인 생활이 안 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외교관들이 북한에서 가장 형편이 나은 평양을 탈출해야 할 정도면 평양의 경제난도 심각한 상태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정황은 식별되지 않고 있다. 작년 북한의 교역 총액이 전년 대비 80%가 급감했는데도 환율·물가는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살인적인 경제난 속에서도 북한 당국이 평양을 특별 관리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조미료, 화장품, 사치품 등 외국산 물자 조달엔 어려움이 있지만 당장 굶어 죽을 상황은 아닌 듯하다”고 했다.

하지만 평양을 제외한 지역의 사정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탈북자 A씨는 “평양공화국이란 말이 왜 나왔겠느냐. 북한 정권이 체제를 떠받치는 당·정·군 핵심 계층이 모여 사는 평양에 모든 물자를 우선 공급하려 다른 지역을 희생시키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북한 체제의 내구력이 빠르게 약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용수 기자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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