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북한군에 총살당했다는데 아직까지 국방부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지난 21일 낮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 앞바다에서 실종됐다 북한군에 총살당한 공무원 이모(47)씨의 형은 24일까지도 정부나 군 당국으로부터 동생의 피격 사실을 공식적으로 통보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동생의 총격 피살 사실을 언론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면서 “지난 22일 해양수산부에서 동생이 실종됐다고 해서 오늘 아침까지 소연평도 현장 수색에 저도 참가했는데 총살 사실에 대해 한마디도 없었다, 군이 저를 갖고 장난친 것 아니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어 그는 “동생이 표류하던 때 군은 엉뚱한 곳을 수색하고 있었다”면서 “북한이 총을 쏴서 죽이고 나니 자진 월북이라는 얘기를 꺼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동생은 죽음을 당하고 시신도 훼손됐다”면서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해 북한에 만행을 당했는데 월북이라고 몰아가는 건 명예훼손”이라고 했다.

공무원이 남긴 슬리퍼 -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 A씨의 슬리퍼가 24일 A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밧줄 더미 사이에서 발견됐다. 해경은 “슬리퍼는 이날 조사관이 승선해 촬영했으며 공무원 실종 당시 모습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공무원이 남긴 슬리퍼 -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 A씨의 슬리퍼가 24일 A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밧줄 더미 사이에서 발견됐다. 해경은 “슬리퍼는 이날 조사관이 승선해 촬영했으며 공무원 실종 당시 모습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그는 동생의 자진 월북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공무원증이 배에 그대로 있었다”면서 “군은 대체 무엇을 근거로 동생이 월북했다고 하는 것인지 상세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과도한 채무로 인한 월북 가능성에 대해서는 “애들한테 돈도 들어가고, 집세도 들고 누구나 그런 것 아니냐”면서 “그런 건 월북이라고 주장할 만한 사유가 전혀 못 된다”고 했다.

이씨의 부모 등 다른 가족도 “월북했다는 군 당국의 발표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서해어업관리단 측은 “이씨의 부모가 월북이라는 말에 화를 내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씨가 몸담고 있던 전남 목포 서해어업관리단의 직원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관리단 동료 A씨는 “이씨는 평소 묵묵하게 자기가 맡은 일을 수행하는 든든한 동료였다”며 “월북이라니 터무니없다”고 했다. 박정균 서해어업관리단 상황실장은 “말 그대로 성실한 공무원이었다”며 “월북이라는 말에 직원들도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평도 경계 강화 - 24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해병대원들이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지난 21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는 다음 날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군에 “경계 태세를 더 강화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장련성 기자
연평도 경계 강화 - 24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해병대원들이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지난 21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는 다음 날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군에 “경계 태세를 더 강화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장련성 기자

다만 일부 동료 직원은 “이씨가 직원들에게 수백만원씩을 빌렸고 결국 그 돈이 2000만원 넘게 불어났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동료는 “최근 법원에서 급여 가압류 통보를 받아 이씨가 심적 부담을 겪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상황실장은 “급여 가압류 여부는 사적인 문제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해양수산부 산하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8급 공무원이다. 2012년 기능직 9급 선박항해원으로 서해어업관리단에 입사해 어업지도선에서 불법 어업 단속·지도, 선박 안전 운항 관리 등의 업무를 맡았다. 단속 인원이 부족해 항해는 물론이고 방검복까지 착용하고 현장 단속 업무도 벌였다. 이씨는 목포 관리단 숙소에서 직원 2~3명과 함께 살고 있었다.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1993년 완도수산고를 졸업한 이씨는 공무원 임용 전에 원양어선에서 수년간 선박 항해 경력을 쌓았다. 해수부는 서해를 포함, 남해와 동해에 각각 어업관리단을 두고 있다. 우리 해역의 31%를 차지하는 서해를 담당하는 서해어업관리단은 어업지도선 13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14일 499t급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일등항해사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무궁화 10호는 승선원 15명을 태우고 지난 16일 목포 국가어업지도선 전용 부두에서 출항해 10일간 일정으로 연평도 일원에서 꽃게잡이 어선을 상대로 지도 업무에 나섰다. 이씨는 출항 때 무궁화호에 탑승하지 못해 육로로 이동한 뒤 연평도 부근에서 작은 배로 무궁화호에 접안해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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