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우리 국민을 해상에서 총격으로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것을 우리 군이 6시간여 동안 각종 감시 장비로 거의 실시간 파악하고도 적극적인 구명(救命)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군 당국은 “북한 해역에서 벌어진 일인 데다 북한이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고 밝혀 군색한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실종된 어업지도선 선원 A씨가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을 군 당국이 처음으로 파악한 것은 지난 22일 오후 3시 30분쯤이었다. 북한 수산사업소 소속 선박이 황해도 등산곶 앞바다에서 실종자 A씨를 발견했다는 정황을 입수했다. A씨가 실종된 지점에서 38㎞,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선 북쪽으로 3~4㎞ 떨어진 지점이었다. 군 관계자는 “당시 북한 해역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실종된 A씨로 특정하긴 어려웠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1시간 10분 뒤인 오후 4시 40분쯤 군 당국은 등산곶 앞에서 발견된 사람이 실종된 A씨라는 결정적 정황을 파악했다. 수산사업소 선박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북한 해군 단속정이 A씨에게 표류 경위와 월북 경위를 파악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북한군이 방독면과 보호의를 입고 실종자를 단속정과 일정한 거리를 띄워 놓은 뒤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4시간 20분 뒤인 오후 9시쯤에는 북한 해군 상급 부대에서 단속정에 A씨를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린 정황이 군 당국에 포착됐다. 하지만 이때도 우리 군 당국은 특별한 대응 조치를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A씨는 40분 뒤인 9시 40분쯤 북한군에게 사살당했다. A씨의 시신은 오후 10시쯤 북한군이 해상에서 불태웠는데, 오후 10시 11분쯤 우리 군의 열상 감시 장비에 불꽃이 포착됐다.

A씨가 북측 해역에서 처음 발견된 뒤 6시간 30여 분 동안 군 당국은 각종 정보 수집 수단을 통해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거의 실시간으로 구경만 했던 셈이다. 별다른 구명 조치를 하지 않은 데 대해 군 당국은 “북한 측 해역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피격 장소를 정보 분석을 통해 나중에야 알게 됐으며, 북한이 A씨를 사살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설마 그런 만행을 저지를 줄 몰랐다”며 “우리 정보 감시 능력을 북한에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판문점 등 남북 간 대화 채널이 모두 끊겨 있는 점도 즉각적인 대응을 어렵게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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