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가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25억 달러(약 3조1000억원) 규모의 돈세탁에 관여한 혐의로 30여명의 북한인과 중국인을 무더기 기소했다. 미국이 기소한 북한의 제재 위반 사건 중 최대규모다.
 
문서에 서명하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 /연합뉴스

28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이날 북한 국적 28명과 중국 국적 5명을 250여개의 유령 회사와 북한의 대표적 외환은행인 조선무역은행(FTB)의 비밀 지점을 전 세계에 세워 25억 달러 규모의 돈세탁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했다.

법무부는 이들이 세계 각지에서 조선무역은행의 대리인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탁된 자금은 조선무역은행으로 흘러들어갔으며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 지원에 사용된 것으로 법무부는 봤다.

조선무역은행 전직 총재인 고철만과 김성의가 기소된 이들 가운데 포함돼 있으며 전직 부총재 2명도 있다. 또 태국에서 조선무역은행의 비밀 지점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한기성의 경우 북한의 정보기관 소속이라고 WP는 전했다.

공소장에는 이들이 △중국 베이징과 선양 △러시아 모스크바 △오스트리아 △리비아 △쿠웨이트 △태국 등지에서 유령 회사와 조선무역은행 비밀 지점을 마련해놓고 미국의 금융시스템 등을 이용해 돈세탁을 시도한 사례가 적혔다. 총 50장인 공소장에는 이렇게 나열된 사례만 30장 분량에 달한다.

미국은 재무부 차원에서 북한의 제재 회피를 겨냥해 독자적 제재를 하고 있지만 법무부 차원에서 북한 국적자를 무더기 기소하는 건 이례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북미협상 교착 중에 제재 회피 활동을 계속해나가는 북한에 경고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중국과의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중국의 대북협조에 경고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이클 셔윈 워싱턴DC 연방검사장 대행은 "이번 기소는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 불법적으로 접근하려는 북한의 능력을 방해하고 불법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증강을 위한 불법적 행위로 수익을 얻으려는 (북한의) 능력을 제한하는 데 미국이 전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당국이 신병을 확보한 것은 아니어서 이들이 실질적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직 고위 당국자들을 포함해 북한인 28명을 한꺼번에 기소한 것 자체가 미국 법 집행의 극적인 강화를 보여준다고 WP는 지적했다.

이어 이번 기소를 통해 해당 인사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한편 미국이 제3국과의 외교적 관여를 통해 이들의 체포 및 인도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부연했다.

공소장에는 몰수 요청도 포함돼 있다. 미국 정부는 2015년 이후 지금까지 6300만여 달러(약 781억원)를 몰수한 상태라고 적시됐다.

이날 기소는 미국과의 협상 교착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제재회피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북한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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