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공조와 북한 편들기 사이의 외통수 피하려 '금강산 개별 관광' 꼼수
대북 제재 현실 모르는 무지한 시대착오적 발상
 

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대북 제재의 틀을 벗어나서라도 금강산 관광 등 대북 협력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15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미·북 대화에 앞서 남북 협력을 먼저 할 수 있음'을 전달했다. 미국은 양자가 같이 가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함으로써 우리 측 제안을 사실상 일축했다. 문 정부는 노골적으로 한·미 동맹과 국제 공조를 버리고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며 파멸로 갈 참인가.

김정은은 지난해 말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정면 돌파'를 선언하며 이를 신년사로 대신했다. 예년과 달리 남북 관계는 언급조차 없었다. 지난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은 문 정부에 '주제넘게 중재자 노릇' 하지 말라고 기상천외한 막말을 총동원해 경고를 계속했다. 문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북(對北) 스토킹(stalking) 강도를 높여 가고 있다. 김정은은 왜 문 정부의 애타는 구애를 면박 주다 못해 무시까지 하는 걸까.

김정은에게 생애 최고의 시간은 2018년이었을 것이다. 핵 능력은 강화하면서 선대(先代)도 놀랄 정도로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한·미 동맹은 흔들렸고 소원했던 북·중·러 관계는 회복됐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에게 '고생 끝, 대박 시작'이라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나 김정은의 봄은 1년 만에 하노이에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중재자로서 공적을 부풀리기 위한 문 정부의 허풍을 믿고 트럼프 대통령을 너무 쉽게 생각한 탓이다. 실수를 인정해선 안 되는 전지전능한 김정은에겐 속죄양이 필요했다. 문 정부는 최고 존엄에게 거짓을 아뢴 괘씸죄에다 '잡아놓은 물고기'니 미끼를 줄 필요도 없고 어떤 구박에도 맹종만 거듭하니, 속죄양으론 안성맞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핵 포기 전략적 결단을 했다'는 거짓말을 믿고 화려한 쇼에 동참했으나 중간선거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과실은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한 문 정부가 독차지했다. 남북 공조 꼼수에 속은 것이 분하긴 하나 실수를 감춰야 했다. 그래서 "김정은과 좋은 관계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실험, 전쟁을 막았다"고 자랑을 계속한다. 하지만 이를 믿거나 관심 가지는 미국 사람들은 날로 줄고 있다. 역풍이 우려돼 북핵 문제를 다시 띄우기도 조심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핵은 먹을 건 없지만 버리긴 아까운 계륵(鷄肋·닭의 갈비) 같은 존재다.

북한은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큰소리친다. 미국이 국제적 망신을 각오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런 허세가 통할 리 없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고강도 국제 제재와 미 군사 공격까지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도발을 하긴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안전엔 문제없어. 작은 도발이야. 늘 그래 왔어. 김정은과 여전히 좋은 관계야"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의 도발은 언제든 가능하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제외한 미사일이나 위성 발사, 한국만을 겨냥한 군사 공격 등이 이에 해당한다.

김정은의 대남 무시는 문 정부에 대한 무언(無言)의 최후통첩이다. 미국이 셈법을 바꾸면 최선이겠지만 현실적으론 어렵다. 그래서 '꿩 대신 닭'으로 우리 셈법을 바꾸라고 한다. 문 정부는 총선 승리 후 한·미 동맹을 희생해서라도 민족 공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그때까지 못 기다리겠다 하니 지금 국제 공조와 북한 편이란 외통수 갈래 길에 서게 됐다.

문 정부는 외통수를 피해갈 묘수로 '금강산 개별 관광'을 밀어붙일 기세다. 북한은 여행의 자유가 없는 독재국가라 개별 관광 자체가 불가능하다. 2008년 북한 경비병의 사격으로 우리 국민이 사망한 데 대해 여태 사과 한마디 없다. 단체 관광마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단 의미다. 미국은 국제 공조를 허물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북한도 이 정도 당근으로 문 정부가 목을 매는 총선용 이벤트에 동참할지 미지수다.

국가안보실 내 이른바 동맹파와 자주파의 갈등이 보도된 적 있다. 대통령의 신년사와 최근 정부·여당 고위직의 언행을 볼 때 동맹보다 남북 관계를 우선시하는 자주파가 이긴 것 같다. 급기야 통일부 대변인은 대북 정책은 주권 문제라 했다. 여당 중진 의원은 주한 미 대사에 대해 조선 총독이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대북 제재가 어떻게 변했는지도 모르는 무지하고 시대착오적 망발이다. 아직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처럼 북한에 뭐든 퍼줄 수 있는 줄 아는가. 이런 태도로 국제사회와 담을 쌓고 북한 편에 서는 것은 국가적 자살에 이르는 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20/20200120034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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