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전부 라인 리선권 외무상 기용
軍출신… 협상보다 기싸움 벌일듯… 北외교 주도권 다시 통전부가 쥐어
정부 일각선 내심 반기는 분위기 "우리 제안에 응답할 가능성 커져"
 

전문가들은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의 외무상 발탁에 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미(對美) 정면돌파 의지가 녹아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인민군 대좌(대령) 출신의 대남 강경파로, 외교와는 아무 인연이 없는 인사를 대미·북핵 외교 수장에 앉힌 것은 당분간 미국과 본격적인 협상을 할 뜻이 없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정부 일각에선 "경위가 어찌 됐건 '통전(통일전선부) 라인'이 영전한 것은 경색된 남북 관계엔 긍정적 신호"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 신임 외무상으로 임명된 것으로 19일 알려진 리선권(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 뒤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북한 신임 외무상으로 임명된 것으로 19일 알려진 리선권(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 뒤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리선권은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 단장을 지낸 김영철(현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밑에서 회담 일꾼으로 '육성'된 인물이다. 회담장에서 김영철·리선권을 상대해 본 전직 정부 관리는 "리선권은 거친 언사를 퍼부으며 우리 측을 압박하는 김영철의 회담 수법을 가장 충실히 전수받은 수제자"라며 "'김영철 사단'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천안함 폭침 직후인 2010년 5월엔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정부가 제시한 천안함 폭침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2011년 남북 군사실무회담 때도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며 "천안함은 모략극"이라고 했다.

리선권은 2016년 김영철이 대남 총책(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에 기용되자 그 지휘를 받는 조평통 위원장에 발탁됐다. 남북 대화 국면이 열린 2018년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과 다섯 차례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그해 9월 평양 정상회담 당시 우리 대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말해 논란이 됐다. 리선권의 외무상 기용을 두고 "작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외무성으로 넘어간 대미 외교 주도권을 통전부가 다시 가져온 모양새"라는 해석이 나온다. 남주홍 경기대 초빙교수는 "하노이 노딜 이후 대대적 검열을 받고 대미 협상에서 배제됐던 김영철·리선권의 통전 라인이 다시 부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노이 노딜 이후 호명 서열이 크게 하락한 김영철의 위상이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이 '대미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상황에서 '김영철·리선권팀'에 허락된 '운신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대북 소식통은 "김영철·리선권의 '통전 라인'은 이미 '하노이 노딜'로 큰 화(禍)를 당했기 때문에 '모험'보다는 '현상 유지'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탄핵·대선 국면에 접어든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외교에 올인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고려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은 지난 연말 열린 당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러시아 대사를 지낸 김형준 전 외무성 부상을 당중앙위 부위원장 겸 당 국제부장에 기용했다. 국제부장은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당대당(黨對黨) 외교를 총괄한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중·러를 뒷배로 활용하며 탄핵·대선 국면인 트럼프 상대로 기싸움 하겠단 의도"라고 했다.

정부 일각에선 리선권의 '영전'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현재 북한의 노골적인 '남조선 패싱' 기조는 '하노이 노딜' 이후 통전 라인이 대대적 검열로 힘이 빠진 것과 무관치 않다"며 "리선권 기용이 통전 라인 부활의 신호탄이 맞는다면 냉각된 남북관계에 긍정적 자극을 줄 여지가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연초부터 미국의 '과속' 우려에도 북한 개별 관광 추진 등 남북 교류·협력 강행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리선권의 외무상 기용으로 미·북 협상 전망은 다소 어두워졌지만, 남북 관계는 다른 얘기"라며 "통전 라인에 다시 힘이 실린 게 사실이라면 정부의 대북 제안에 북이 어떤 식으로든 응답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20/20200120001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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