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美北정상회담·김정은 답방 앞두고… 한승주 前 외무장관, 한반도 정세를 말하다
 

"요즘은 안보 문제에 별 관심 없던 친척들도 만나면 '주한미군은 괜찮은 거냐'고 물어요. 트럼프라면 북핵 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 축소는 물론 철수도 할 수 있다고 보입니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자리에 앉자마자 주한미군 얘기부터 꺼냈다. 김영삼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주미 대사로 1·2차 북핵 위기와 한·미 동맹의 최일선을 지켰던 그는 최근 미·북 협상에 기대보다 우려가 큰 듯했다. 그는 "김정은은 우리가 바라는 '완전한 비핵화'를 할 생각이 없고, 트럼프는 이를 이끌어낼 의지가 없다"고 했다.

16일 서울 경희궁 옆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전 장관을 만나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마침 이날 미·북 고위급 회담이 이번 주 열리고 2차 정상회담 일정과 장소도 확정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차 미·북 회담을 어떻게 전망하나.

"합의가 나온다고 해도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가 회유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정은은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것을 내놓고 경제 제재를 완화 내지 해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는 국내 정치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미·북 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대성공'이라고 과장해 선전할 것이다."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이 어렵다고 보나.

"아직 '비핵화' 정의에 대한 합의도 없고 트럼프도 그걸 따져보려 하지 않는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말한 '핵무기 추가 생산·실험·사용·이전 안 한다'는 게 북한식 비핵화의 정의다. 여기에 미국 전략무기 한반도 전개 금지, 주한미군 철수까지 언급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할 의지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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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C}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이 지난 16일 서울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북핵 변화가 없는데 평화 기대가 과도하게 커진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이 지난 16일 서울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북핵 변화가 없는데 평화 기대가 과도하게 커진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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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한다.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희망적 사고가 많이 반영된 해석 아닌가. 안보와 평화에 대해 근거 없는 안도감을 주려 하면 안 된다. 위장된 선의를 과신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

―북한이 ICBM만 폐기하면 미국이 핵보유를 묵인할 거라는 우려가 많다.

"미국은 자국의 안전을 우선적 목표로 삼기 때문에 그러한 거래를 충분히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ICBM 폐기를 큰 성취라고 할 거고, 영변 시설까지 폐기한다면 '대성공'이라고 우길 것이다. 그러고 나서 더 이상 북핵 협상에 관심을 안 둘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ICBM을 폐기해도 그걸 만든 과학자, 기술, 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위협이 제거됐다고 할 수도 없다."

―실제 주한미군 감축, 철수가 가능하다고 보나.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상호 전략적으로 필요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주한미군을 북한과의 협상, 아니면 한국과의 방위비 협상에서 레버리지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핵우산'에 대한 대가도 요구할 수 있다. 물론 그 경우 미 군부가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주한미군을 뺀다고 하면 시리아 철군 때와는 달리 국방장관이 물러나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다만 트럼프 주변에 잘못된 줄 알면서도 비위를 맞추려고만 하는 인사가 많아 걱정스럽다."

―그렇다면 방위비는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수용해야 하는 건가.

"받느냐 안 받느냐의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실용적으로 우리의 실익이 어디에 있는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 문제는 감정이나 이념, 또는 국내 정치적 맥락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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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C} 카터 前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 - 한승주 외무장관이 1994년 6월 1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방북을 앞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카터 前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 - 한승주 외무장관이 1994년 6월 1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방북을 앞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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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제재 완화를 놓고 한·미 간에 갈등이 많이 노출됐다.

"제재를 풀어 주면 북한의 안보 불안감이 해소되고 따라서 비핵화도 이뤄진다는 건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다. 미국은 불만을 대외적으로 다 표출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불신이 쌓여 있을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종전 선언이 비핵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하는데.

"종전 선언은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 명분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 종전 선언이 없어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한반도에 긴장 상태가 온 것이 아니다. 북한이 이를 요구하는 것은 경제 제재를 철회시키고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지금으로선 불가능하지만, 미국이 예외 인정해 주면 가능하다. 네덜란드의 둑이 조그만 구멍에 무너지듯 금강산·개성공단 재개하면 국제 제재 시스템 자체가 구멍 날 수 있다."

"트럼프 뒤치다꺼리하는 美국무부… 한국 외교부도 비슷해져"
외교부 역할 줄어들자 우려 "靑이 나서니 일할 공간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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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C}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이력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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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전 장관은 최근 비핵화 협상과 남북·미북 관계 진전 과정에서 외교부 역할이 부족하고 '4강 외교'도 약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과거 북한 핵 문제 처리 과정에서 외교부가 전면에 나서서 협상을 주도했던 것과는 너무 대비된다는 것이다.

한 전 장관은 "외교부의 존재감은 기본적으로 청와대가 얼마나 재량권을 허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며 "외교부의 역할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청와대 요인이 많아 보인다"고 했다. 또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문제 전반을 좌지우지하고 국무부는 그 뒤치다꺼리를 하는 상황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김영삼 정부 때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1994년 북핵 문제를 처리할 때 외교부가 주도적 역할을 했어요. 인사(人事) 측면에서도 청와대가 간섭한 게 거의 없었습니다. 별도의 인사안이나 지침도 내리지 않았고요. 당시 대통령이 외무부 장관이던 나한테 주문한 인사는 주미 대사 등 딱 3명뿐이었습니다. 그나마 한 명은 내가 반대했더니 알았다고 바로 거둬들였어요. 대통령 본인의 신념과 고집이 있었지만 이념에 따라, 진영 논리에 의해서 정책과 인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외교부에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을 준 것이죠."

한 전 장관은 그러나 "지금 청와대는 자기 어젠다가 너무 뚜렷해서 외교부가 일할 공간이 좁아져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직(職)을 걸고 할 일은 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미국·중국 상대로 외교력 높이려면 일본과의 우호 필수"
나빠진 한일 관계에 고언

한승주 전 장관은 최근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 "정부나 국민 모두 궁극적 국익이 무엇인지 좀 더 크고 멀리 내다보면서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뿐 아니라 미국·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존재감과 외교력을 높이려면 일본과 우호적 관계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한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때 일을 예로 들었다. 그는 당시 주미 대사였다. 한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은 한·미 우호 관계 유지를 위해 미국에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던 진보층을 직접 적극적으로 설득했다"며 "그들이 바로 노 전 대통령 지지층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도자의 용기와 리더십을 발휘할 때"라고 했다.

일본 정부가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치 지도자는 외교를 정치적 이해관계와 연계시켜선 안 된다"고  했다. 다만 "상대방이 그렇게 한다고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이로운 일이 못 된다"고 했다.

한 정 장관은 최근 일본이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북 단속용 군함을 파견받는 등 유럽·동남아와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일본과 싸우면 일본에 호의적인 유럽과 미국, 동남아와 우리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17/20190117032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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