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콜 '고참병'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정치적 인간을 혐오하지만 요즘은 차라리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 인간이었으면 이토록 답답하고 막막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치적 손익에 민감하다면 탈(脫)원전 정책이나 소득 주도 성장을 저렇게 미욱하게 밀고 나갈 수는 없을 터이고 조국 민정수석을 재신임할 수도 없을 것이다. 더 심각하게는 그가 추진하는 방식의 대북 정책이 불러올 재앙에 대해 개념도 없는 것 같다. 김정은이 서울에 오면 북핵 폐기가 진척될 것이라니, 어찌 그리 순진무구한 생각을….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서울에 와서 손만 흔들어주면 한국 국민이 그를 차기 대통령감으로 점찍고, 그의 권력 유지와 쾌락을 위해서 혈세를 무진장 퍼주고 싶어 할 것으로 기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안 오게 하는 것이 김정은 자신과 대한민국을 위해 좋을 것이다.

김정은을 없애고 싶어 할 개인과 집단이 한둘인가. 김정은이 언제 총애를 거두고 수용소에 보낼지 몰라 좌불안석인 북한의 권력 엘리트들, 부모가 김정은에게 무참히 살해돼 그 원한에 떠는 탈북민들, 동족의 70년 고난을 정의(正義)의 칼날로 응징하고 싶은 열혈 지사,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 암적(癌的) 존재를 도려내고 싶은 세력…. 그러나 김정은에 대한 여러 시도는 만일에 성공하더라도 무력 충돌을 유발할 것이고 그 사태가 어떻게 비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은 전 세계를 뒤흔들지 않았는가?

1차 세계대전 당시 20대 처녀로서 후에 작가, 시인, 정치가로 명성을 얻은 영국의 평화주의자 마거릿 콜은 '고참병(The Veteran)'이란 제목의 시(詩)에서 당시 전쟁의 참상을 이렇게 소묘했다.

"우리는 볕을 쬐고 있는 그를 우연히 보았다./ 전쟁에서 눈을 잃고 남겨진 군인./ 철책 너머 주점에서 젊은 군인들이 나와서/ 그에게 경험자의 충고를 들려 달란다.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사람 의 머리가 폭탄에 날아가는 악몽을/ 들려주었다. 그러고는 우리의 기척을 듣고/ '불쌍한 친구들, 초년병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 서서 그가 눈알 없는 눈을/ 병사들이 사라져 간 방향으로 돌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리 중의 하나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몇 살이세요?'/ '5월 3일이면 열아홉 살 돼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10/20181210035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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