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백두산 등반은 알려진 것처럼 ‘깜짝 일정’이 아니라 김정은이 일주일 전부터 계획한 일정이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중 제안해 이뤄진 돌발 일정이 아니라, 문 대통령의 방북 전부터 사전 준비가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일 소식통들을 인용, "백두산 근처 양강도 삼지연군에서 지난 13일부터 도로보수 작업이 진행됐다"며 "김정은이 그동안 알려진 문 대통령의 백두산 방문 희망을 기억하고 사전 준비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20일 오전 평양순안공항을 출발해 삼지연공항에 도착한 후 차량을 이용해 백두산 남쪽 정상인 장군봉에 올랐다. 이어 케이블카를 타고 오전 10시 20분 쯤 백두산 천지에 도착했다. 천지에서 문 대통령과 김 여사, 김정은과 아내 리설주 여사가 함께 산책을 했다.

RFA는 김정은이 문 대통령과 함께 백두산에 가기 위해 양강도 혜산시부터 삼지연 구간까지 대규모 도로정비 작업을 하고 비상경비태세를 갖췄다고 전했다. 모든 차량과 사람의 이동을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20일 백두산 장군봉에서 천지를 배경으로 손을 잡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리설주 여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 /평양사진공동취재단

RFA는 양강도 취재원을 인용, "중앙정부와 양강도 고위 간부가 삼지연군에 집결하고 도로정비 작업에 공장과 정부기관, 인민반 주민을 대거 동원했으며 공안 기관과 경비대도 총동원됐다"고 전했다.

백두산 등반 하루 전인 19일에는 혜산시를 통제하고 삼지연군 자체를 완전히 봉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혜산시에서 모든 일반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골목 구석구석까지 보안원과 보위원이 경계를 섰다. 이날 오후에는 호위사령부로 보이는 경호차량 7대를 포함해 벤츠 등 차량 30대가 혜산 시내에 나타나기도 했다.

이지마루 지로 일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RFA에 "백두산에 올라가려면 삼지연군에 가야 하는데, 두 정상이 백두산 등반을 하기 위해선 주변을 완전히 봉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준비 거점이 혜산시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삼지연군 대규모 건설 공사에 동원됐던 북한 주민들은 문 대통령의 백두산 방문 기간에 이동이 금지된 채 격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정상의 백두산 등반에 동행하는 한국 취재진에게 이들의 모습을 감추려고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지로 대표는 "북한 당국이 다 준비한 상황이어야 외국 일행이 돌아다닐 수 있는데, 이는 북한의 전통적인 이미지 전략"이라고 했다.

이날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옷차림도 백두산 등반이 사전 계획됐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문 대통령은 검은색 겨울용 롱코트를, 김 여사는 하얀 등산 점퍼에 목도리까지 두른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백두산 등반을 염두에 두고 남쪽에서 코트와 점퍼를 챙긴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현재 평양 날씨는 겨울 점퍼를 입을 정도는 아니다.

 
김정숙 여사가 2018년 9월 20일 백두산을 방문, 미리 한라산 물을 담아온 생수병에서 물을 반쯤 비운 뒤 천지 물을 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 여사는 ‘한라산 물’을 백두산에 가져가기도 했다. 김 여사는 물이 반쯤 담긴 500mL 생수병을 손에 들고 백두산에 가 "한라산 물을 갖고 왔다. 천지에서 반은 붓고 반은 백두산 물을 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부터 한라산 물을 준비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4월 판문점 정상회담 만찬 때 김정은에게 "내가 오래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데 바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레킹(도보여행)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이번 18일 평양행 비행기 안에서 "나는 백두산에 가되 중국이 아닌 북쪽으로 올라가겠다"고 공언했다. 김정은이 북한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는 게 소원인 문 대통령을 위해 미리 일정을 준비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21/20180921013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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