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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세금 주도 정부

기사승인 201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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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투기·기부인지 모호한 南北 경협에 납세자인 국민 의견·동의 없이 재정 투입
일자리·고용에만 68조 풀어… 세금이 마르면 지금 정부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지금의 강대국 미국의 출발점은 부당한 세금 징수에 대한 저항이었다. 18세기 중엽 재정이 악화된 영국은 '설탕법' '인지세법' 같은 식민지 세금을 통과시켜 영국령 식민지 개척민들에게 부과했는데, 어떤 연유인지 그들이 런던의 영국 의회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미국의 13주는 "대표권 없이는 세금도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며 저항했고, 조지 워싱턴을 중심으로 전쟁에 나선다. 미국의 독립을 이끈 '아메리카 혁명'의 시작이다. 혁명의 불을 댕긴 '인지세법'은 모든 신문과 팸플릿 등에 인지(印紙)를 붙이도록 한 법으로, 사실 액수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의 국부(國父)들이 문제 삼은 건 액수보다 원칙이었다.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을 놓고 여당과 야당이 대립하고 있다. 야당은 아직 핵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천문학적 액수(금융위원회 추산 153조원, 2014년 통일금융보고서)를 감춘 미끼 예산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대하고 있고, 여당은 우리가 북한에 재정을 투입하면 20~30배 경제 혜택이 돌아올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당리당략을 떠난 통 큰 결정을 요구한다. 이쯤 되면 '남북 경협'은 정확한 액수는 둘째 치고 '투자'인지 '투기'인지 '기부'인지, 그 정의(定義)마저 모호하다.

대한민국 납세자로서 나는 앞서서 경협을 서두르는 정부를 보며 대표권 없는 곳에 세금 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갈 수도 없는 땅, 언제 갈지도 모르는 땅에 우리 세금이 흘러들어 간다. 평화 통일 비용이라면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으나, 그 시기는 최소한 자유 왕래가 된 후라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핵을 쥔 북한의 '사회주의 강성 국가' 건설을 왜 우리가 도와야 하는지, 투자라면 수익률을 알려줘야 하고, 기부라면 기부자의 뜻을 물어야 한다. 이건 당리당략과는 상관없는, 납세자에 대한 도리에 관한 일이다.

경협뿐만이 아니다. 세금을 쓰는 정부의 배포는 놀라울 정도다. 이미 일자리 예산을 42조원 투입했고, 내년 일자리 예산을 22조 풀겠다고 했으며, 자영업자 지원 대책으로 7조원을 풀었다. 고용이 부진하자 4조원을 재정 보강했고, 바로 얼마 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열며 남북 경협 중단 피해 기업에 1228억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세금이 마르면 지금 정부는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9·13 부동산 대책을 보니 당분간 그럴 걱정은 접어도 좋을 듯하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정부가 택한 것은 결국 세금 더 걷기를 통한 수요 억제였기 때문이다. 명분은 주택 시장 안정화에 두고 있지만 뜯어보면 증세 정책인 이번 정책이 성공하면 좋겠으나, 설사 실패해도 정부 주머니에는 1조원 넘는 세금이 들어온다. 투기에 별 관심 없는 수많은 1주택 가장(家長)들은 영문도 모른 채 오른 재산세 통지서를 받아 들게 되었다. 불과 두어 달 전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위가 내놓은 종합부동산세 개편 방안도 세율을 조절해 세수 1조3000억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정책의 최종 승자는 무(無)주택자도, 1주택자도, 다(多)주택자도 아닌, 정부다.

설사 부동산 상황이 계속 나빠져도 정부 재정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해찬 여당 대표는 부동산 시장이 더 교란될 경우 '정말로 더 강한 조치'를 예고했는데, 그게 '더 높은 세금'일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강남불패'를 만들어 냈다면 문재인 정부는 '정부 불패'의 조세 구조를 만들었다.

토머스 제퍼슨이 말했다는 민주 국가의 존재 원리는 피통치자의 동의(consent of the governed)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통치 구조를 폭정(暴政)이라고 부른다. 지금 정부는 세금을 걷고 쓰는 데 얼마나 국민의 동의를 구하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제3차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간다. 비핵화와 종전 선언이 순조롭게 이뤄져 평화가 가시권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그다음에는 남북 경협이라는 거대한 과제가 남는다. 지금의 속도와 강도로 대북 정책을 밀고 나간다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 고령화에 접어들어 세금 낼 인구가 줄어드는 우리나라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더욱이 바깥으로 확장하는 성장 경제가 아니라 안에서 나눠 먹는 분배 경제로는 어림도 없다. 세금 내는 국민을 귀하고 두렵게 여기지 않아 혹독한 대가를 치른 정권의 사례는 역사상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7/2018091703289.html

조선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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