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성 베이징특파원
이길성 베이징특파원

"중국은 공업·무역국가의 눈으로 포스트 공업국가이자 금융국가인 미국을 바라보며 그저 개발도상국으로서 제조업에서 이룬 성취에 취했다." "중국 굴기는 '달러 시스템 내의 지위 상승'일 뿐이다." "경제학을 배웠다면 '미국의 몰락'을 쉽게 말하지 말라."

리샤오(李曉) 지린대 금융학원장이 올 6월 말 이 대학 졸업생들에게 전한 축하연설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죽비'와 같았다. 그는 듣기 좋은 덕담 대신 '중국이 얼마나 허약하며 미국의 달러 패권이 얼마나 공고한지'를 냉정하게 설명했다. 1만3000여 자(字) 분량인 그의 연설은 최근 두 달간 중국 온라인을 달궜다. 일부에선 '미국 첩자'라고 돌팔매질하는 이도 있었지만 "지식인의 용기란 이런 것"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의 연설에서 가장 와닿은 대목은 "(미국과 무역전쟁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라며 민족주의 정서로 국민을 선동하는 부류를 '지식상의 의화단(智識上的義和團)'이라고 꼬집은 부분이다. 청나라 말기 반(反)외세 운동을 일으킨 의화단은 외세에 대한 통찰이 결여된 채 무조건 배척과 폭력을 일삼다가 청의 몰락을 재촉하고 열강의 침략에 더 큰 명분을 주었다.

'지식상의 의화단'이란 말은 쑨원(孫文) 중국 국민당 정부 시절 일본통이던 다이지타오(戴季陶)가 처음 썼다. 그는 저서 '일본론'에서 "일본인은 중국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수천번 해부하고 시험관에 넣고 수천번 실험하지만 우리 중국인은 일본을 그냥 무시한다"고 했다. 그는 국민당의 몰락과 함께 자살했지만 이 표현만은 두고두고 후세를 일깨우고 있다.

현지에서 중국 관련 기사를 쓰면 예외 없이 '짱깨 ××들' 같은 저주와 멸시의 댓글이 달린다. 중국을 긍정하는 기사든 부정하는 기사든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중국에 대한 '지식상의 의화단'이 떠오른다. 댓글 수위가 높다 보니 '한국과 중국을 이간질하려는 북한 심리부대의 공작'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물론 반중(反中) 정서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의 존재와 영향력을 간단하게 무시해버릴 수 없는 게 우리의 처지다. 미국이 최근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그들이 옳고 중국이 틀려서라기보다는 중국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싫을수록, 이해하기 어려울수록 더 연구하고 파고들어야 할 숙명적인 존재가 중국이다.

우리 지도자들이 '중국의 시대'에 대비해 해법을 준비하고, 덕분에 나라 전체가 '자강의 길'로 뚜벅뚜벅 가고 있다면 댓글이야 어떻게 달리든 무슨 상관이랴. 암만 봐도 국내 일부 정치권과 지식인들까지 중국의 실체(實體)에는 눈감은 채 '지식상의 의화단'처럼 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 우리가 그럴 때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8/20180828036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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