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이슈에서 흥분 대신 냉정해져야
언론의 비판 잠재우려는 정부 시도 정당화 안 돼
'매의 눈'으로 진실 캐고 정부 견제 역할 다해야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지난 12일 열린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가까운 학계 동료 교수와 언쟁을 벌였다. "이 회담은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전형적인 미디어 이벤트"라는 필자의 의견에 "역사적인 회담의 의의를 폄훼한다"며 동료 교수가 발끈한 것이다.

결국 필자가 주장을 접었다. 기꺼이 져주고 싶었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이 회담이 잘되길 바라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이 어디 있었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필자의 예상은 적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구체적인 내용이 빠졌다고 염려할 것 없다. 북한은 완전한 핵 폐기 약속을 지킬 것이다. 왜? 내 직관상 김정은 위원장은 믿어도 좋은 훌륭한 지도자니까." 혹시나 하는 기대가 충격을 넘어 경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궁극적 북핵 문제 해결 방식인 '구체적인 스케줄에 따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보아야 한다. 대신 북핵(北核) 폐기는 김정은 위원장의 선(善)한 의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서서히 진전될 것임이 전 세계에 공식화되었다.

이번 미·북 정상 회담은 보여주기식 정치 이벤트를 통해 단번에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평화와 통일에 다가갈 수 있으리란 기대가 얼마나 허망하고 심지어 위험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에겐 비상한 냉정함이 요구된다. 당장 언론부터 흥분을 벗어나 차분함을 되찾아야 한다. 미·북 회담을 전후해서 말 그대로 폭포수처럼 말잔치가 쏟아졌다. 북핵이 여전히 우리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는 상황에서 "감축된 국방 예산을 복지 예산으로 돌리자" "남북 교류 활성화로 청년 취업난을 해소하자" "차를 몰고 북한 전역을 여행하고 싶다" 같은 국민들의 기대감이 여과 없이 방송 전파를 타고 흘렀다.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부풀리지 않고 팩트(fact·사실)만을 직시(直視)하는 언론의 역할이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가 또 있었나 싶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언론의 입지는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의 개최 이후 여론의 대세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이견(異見)을 용인치 않는 분위기다. 이에 대한 비판적 지적은 호전주의자들의 발목 잡기 행태로 간주되어 뭇매를 맞는다.

얼마 전부턴 아예 국가기관들이 언론 길들이기에 발 벗고 나섰다. 지난 4월 2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오보 방지를 위해 국가기관의 공식 발표를 토대로 보도할 것" "그에 대한 특별 모니터링을 실시할 계획"이라는 '남북 정상회담 취재·보도 시 유의사항'을 발표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청와대가 합세했다. 대변인 논평을 통해 조선일보와 TV조선이 내보낸 일부 북핵 문제 보도를 "비수 같은 위험성을 품고 있는" 기사들이라고 비난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북핵 문제 해결에 노심초사하는 정부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의 발전은 껄끄러운 언론을 누르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는 역사의 교훈이 북핵 문제라고 예외일 수 없다. 오보(誤報) 방지를 위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조치는 5공(共) 시절의 보도지침을 연상시킨다. 청와대 대변인의 대응 역시 과민한 것이었다. "자유로운 견해의 개진과 공개된 토론에서 다소 잘못되거나 과장된 표현은 피할 수 없으며,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는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대법원 판결 2000다37524)."

언론의 자유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그 토대는 국가 규제가 아닌 자율 규제가 되어야 한다. 일례로 1995년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은 '평화통일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보도 준칙'을 공동 제정했다. 지금 그대로 사용해도 될 만큼 잘 만들어진 준칙이다.

대북 정책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잠재우거나 순치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통치 집단 입장에서 너무도 불편한 '비판의 보장', 그것이야말로 민주사회의 최상위 가치(價 値)로 헌법에 명문화된 '언론 자유'의 진정한 의미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미 동맹관계와 대북 제재의 큰 틀이 원점에서 흔들리는 비상한 시국에 국정 운영의 한축인 보수 정치 세력은 사실상 궤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매의 눈'으로 북핵 등 문제의 진실을 투시하며 정부를 견제하는 비판 언론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하다. 유일한 희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15/20180615032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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