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주력 산업 추월당하고 제조 설비 30% 놀고 있는데
정부·정치권 너무 태평해… 북한 경제 지원만 하면 되나
 

호경업 산업2부 차장
호경업 산업2부 차장

일본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를 그린 만화 '시마 시리즈'는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시리즈는 시마가 1983년 과장(課長)에서 시작해 부장·이사를 거쳐 사장·회장에 오르는 30여 년간 일본 기업을 둘러싼 동북아 비즈니스 정세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일례로 시마 사장편(2008~2013년)에선 삼성전자(만화에서는 섬상)와 LG전자(만화 속 PG) 같은 한국 수출 대기업과 정부가 힘을 합해 파나소닉, 소니 등 일본 기업을 추월하는 모습을 담았다. 시마는 그가 주재한 임원 회의에서 "일본이 불황기에 돌입해 구조조정을 벌일 때 삼성은 대담한 전략과 빠른 결정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을 배워야 한다" 등 일본인 입장에선 뼈아픈 속내를 드러낸다. 이 시리즈의 작가인 히로카네 겐시는 한국을 경계하며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는 뼈 있는 말도 남겼다. 연재 당시 한 인터뷰에서 겐시는 "일본이 한국에 자리를 내준 것처럼 한국도 중국에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예고대로 10년 전 만화 속 일본 기업을 한국 기업으로, 한국 기업을 중국으로 바꾸면 현재의 동북아 비즈니스 현실이 거의 딱 맞아떨어진다. 만화 속 역동적인 모습의 주인공이었던 한국 정부는 지금의 중국 정부로 바꾸면 된다. 각종 시장 조사 기관 통계를 보면 작년 기준으로 중국 기업은 LCD(액정 표시 장치), 조선 산업, 전기차용 배터리에서 한국을 추월했다. 스마트폰에서는 중국 화웨이·오포·샤오미 등 3대 기업의 합산 세계시장 점유율이 삼성전자를 넘어섰다.

전기차용 배터리에선 일본 파나소닉이 1위이고 중국의 CATL과 비야디(BYD)가 뒤를 잇고 있다. 한때 우리의 미래 산업으로 손꼽혔던 이 분야에서 LG화학과 삼성SDI는 4, 6위이다.

일반인들에게 이름도 생소한 중국 BOE는 대형 LCD 시장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섰다. LCD는 스마트폰·TV·노트북 등의 화면에 쓰인다. IT 제품에서 반도체가 '머리'라면, 디스플레이는 '눈'에 해당한다. BOE가 저급 제품만 생산한다고 여기면 착각이다. 작년 말부터 삼성이 독점하던 프리미엄 스마트폰 화면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제품 양산에 들어갔다.

이제 곧 폴더블(접는) 디스플레이 경쟁도 벌일 참이다. 비결은 정부의 전폭 지원과 공격적 투자이다. 안현호 한국산업기술대학 총장의 증언이다. "중국 정부는 BOE가 적자(赤字)를 내든 상관없이 자금을 지원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경쟁사들이 놀랄 정도의 투자를 해왔다."

반도체를 제외한 우리 주력 산업의 위기 상황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1%로 2009년 이래 가장 낮다. 30% 정도의 설비가 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이면 경쟁력 강화 대책 회의라도 수시로 열어야 할 텐데 우리 정치권과 정부는 너무 태평스럽다. 한 수출 기업 임원은 "주 52시간 근무 시행을 앞두고 선진국처럼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만이라도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려 달라는 요구조차 정부가 묵살하는 걸 보고 절망감이 들었다"고 했다.

기업인들 사이에선 '대기업은 손봐야 할 기득권자' '대기업 낙수(落水) 효과는 더이상 없다'는 신념에 빠진 정부가 위기 국면을 방치하고 있다는 한탄이 쏟아진다. 미·북 정상회담과 지방선거 후엔 대북 경제 지원과 소득 주도 성장에 올인할 것이란 전망이 파다하다. 30년 넘게 피땀 흘려 기술력과 품질을 쌓아온 주력 산업이 진짜 몰락한 다음에야 정신 차릴 건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13/20180613029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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