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 성명 “관세 美 기술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 여전”
므누신 “미중 대화기간 관세 부과안해”...WSJ “강경파⋅협상파 혼선된 시그널”
재무부, 미국에 대한 中 투자 규제안 트럼프에 21일까지 보고 내용 주목
 
중국과 무역협상을 하는 미국 대표단의 협상파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윗줄 왼쪽부터 시계바늘 방향) 래리 커들러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과 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장,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바이두, 트위터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부과를 놓고 미국 정부 내부에서 혼선된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 보도했다.

미국과 중국이 지난 17, 18일 워싱턴에서 무역협상을 벌인 뒤 미중 무역전쟁 우려를 봉합한 공동성명을 내놓은 지 하루 뒤인 20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폭스뉴스에 출연 “미중이 대화하는 기간에는 관세부과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지 수시간 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대표가 “관세는 여전히 우리(미국)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남아있다”고 강조한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것을 WSJ는 혼선된 시그널의 사례로 꼽았다.

므누신 장관은 중국과 협상한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지만 라이트하이저 대표도 협상에 참여했다. 므누신 장관의 언급은 중국 대표단을 이끈 류허(劉鶴)부총리가 19일 인터뷰에서 “미중간에 경제 무역 분야에서 공동 인식에 도달해 미중 무역전쟁을 하지 않고 상호 관세부과를 중지하기로 했다"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중국에 대한 관세폭탄 놓고 미국 정부내 입장차이

WSJ는 대(對) 중국 강경파인 라이트하이저가 언제든지 중국에 관세를 부과 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협상파로 분류되는 므누신이 관세부과를 배제한 건 아니지만 발언의 톤과 핵심요지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라이트하이저와 므누신이 같은 입장에 서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WSJ는 전했다. 므누신 장관이 중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경고한 데다 라이트하이저의 성명 작성에 므누신도 협조했다는 것이다. 엇갈린 시그널 표출은 중국에 대한 압박을 고조시키는 전략 차원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WSJ는 또 다른 관계자를 인용해 므누신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상팀에 앞서 중국의 협상 방향대로 나간 것에 불만이 쌓이고 있다며 므누신의 협상 타결 열망이 미국의 협상 위치를 크게 깍아내렸다고 전했다.

미국이 중국에 요구해온 구체적인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 감축 목표치가 성명에 빠진데다 대(對) 미국 수출 억제보다는 미국산 수입확대로 무역 불균형을 이루려는 중국측의 입장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므누신 장관은 “미국산 농산물 중국 수출이 올해 35~40% 늘어나고, 중국의 미국산 에너지 구입도 향후 3~5년 배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SNS매체 협객도(俠客島)는 “미국으로의 수출을 줄이기 보다는 미국산 수입을 확대하는 것으로 불균형을 해결한다는 마지노선을 지켰다”고 평가했다.

♢협상파와 강경파로 분열된 미국 VS 하나의 중국

1990년대 후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시절 USTR에서 섬유 협상을 이끌었던 도널드 존슨 통상변호사는 WSJ에 “미국 협상팀 내 충돌하는 성명은 미국의 협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시진핑(習近平)과 류허는 어디서 왔는지 분명한데 우리(미국)는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실제 중국은 관영 매체를 동원해 이번 협상이 윈윈의 성과라는 일관된 평가를 전하고 있다.

공산당 일당 체제로 언론검열이 철저한중국과 달리 미국은 다양한 목소리 표출이 가능하다는 차이점도 있지만 미국 통상팀에 협상파와 강경파가 병존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지적돼왔다. 데릭 시저 미국기업연구소(AEI)연구원은 “중국과의 무역에 대해 현장유지를 중시하는 그룹이 있다”며 무역전쟁에 대한 시장과 산업의 반응을 우려하는 므누신 장관과 래리 커들러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이끈다고 전했다. 이들은 중국산을 더 구매하는 것으로 중국과의 빠른 무역협상 타결을 추구했다.

커들러 위원장은 20일 ABC CBS 등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전쟁을 피하기 위한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이번 협상 결과를 평가하고 “수십억 달러 상당의 제품을 중국에 더 수출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라이트하이저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일부 국가안보 담당 관리들이 주도하는 강경파 그룹은 중국 경제모델에 대한 더 크고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며 이를 위해 시장을 망가뜨리더라도 (관세폭탄 같은)무역구제조치를 활용하려는 의향이 있다고 시저 연구원은 지적했다. 이들은 중국의 무역과 투자관행의 일부 변화와 수입증대에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라이트하이저가 성명을 통해 “중국이 더 많은 미국산 제품에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더 중요한 이슈는 강제된 기술이전, 사이버 절도, 우리(미국)의 혁신에 대한 보호와 관련돼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과의 협상을 두고 협상파와 강경 매파간 충돌은 지난 3, 4일 베이징에서의 미중 무역협상때도 드러났다고 CNN이 최근 보도했다. 나바로 국장이 미국 대표단을 이끈 므누신 재무장관의 협상태도에 불만을 갖고 고성과 욕설을 퍼부은 것으로 전해진 것이다.

♢관세폭탄 최소 미북 정상회담까지는 보류...ZTE 제재 풀러 왕이 방미

관세폭탄이 미국의 협상테이블에서 완전히 치워진 것은 아니다. WSJ는 1333개 중국산 품목에 대한 관세폭탄 시한이 이번주 마무리될 예정이었다며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므누신의 발언은 사실상 중국에 대한 관세부과 위협을 최소한 6월12일 미북 정상회담이후로 늦출 것임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어떤 가능한 거래에서도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미중 무역마찰을 서둘러 봉합했다는 얘기다.

커들러 위원장은 ABC방송의 '디스위크'에 출연해 시기를 언급하지 않은 채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의 방중 계획을 공개하고 “후속 협의에서는 LNG를 포함한 에너지와 농업, 제조업 등 미국의 대중(對中)수출을 크게 확대할 많은 분야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달 초 연간 수입규모 500억 달러(약 54조원) 상당의 1333개 중국산 품목에 25%의 '관세 폭탄'을 예고했고, 중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표밭 지역 주산품인 농산물과 자동차 등 연간 수입 500억달러에 이르는 106개 품목에 최고 25%의 관세 부과 계획으로 맞대응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연간 1000억달러(약 108조원)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는 등 양국 무역마찰이 정면충돌로 치닫는 모습을 보였었다.

미국과 중국간 상호 관세폭탄 주고 받기는 일단 보류하는 것으로 결론 났지만 중국의 미국 투자에 대한 규제 향방도 주목대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까지 재무부에 중국의 미국 첨단기술 투자 억제 방안을 마련하라고 재무부에 지시한 상태다.

재무부는 미국에 대한 중국의 투자규제를 위해 규제 대상인 중국기업과 대상기술에 대한 범위를 놓고 연구해왔다. WSJ는 므누신 장관이 기껏해야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 기업의 미국투자 규제방안에 대한 진척상황을 보고하는 정도의 내용을 담은 성명이 나올 것이라는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미중 무역전쟁 봉합으로 미국이 중국 2위 통신장비업체 ZTE에 가한 제재완화 범위와 시점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7년간 금지시킨 조치를 완화할 것을 최근 시사했지만 이번 협상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ZTE 제재가 언급되지 않았다.

이와관련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이번주 워싱턴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미중 무역협상을 브리핑한 미 국측 관계자가 밝혔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협상파로 분류되는 커들러 위원장은 그러나 “ZTE에 대한 제재 변화는 미미할 것”이라며 “거액의 벌금,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조치, 새로운 경영진과 이사진 요구와 같은 가혹한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ZTE가 처벌을 면할 것이라는 기대해서는 안되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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