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정상회담은 세계가 놀랄 世紀의 스펙터클
南北이 평화공존 하면서 美·中·日 동참하는 체제도 가능
한반도 냉전 解氷 앞에서는 진보·보수의 변화도 필연적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미·북 간 샅바싸움이 치열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게임의 한판승을 기대하며 거세게 몰아붙이자 북한은 미·북 정상회담 개최까지 재고할 수 있다며 엄포를 놓았다. 그럼에도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성사될 것이다. 세계사적인 '회담 대성공' 선포의 가능성도 매우 크다. 한반도 정세의 구조 변화가 회담 성공을 재촉한다. 미·북 정상회담을 세계가 놀랄 세기의 스펙터클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두 지도자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한다.

일각의 신랄한 비난과는 달리 '스펙터클의 정치(Politics of the Spectacle)'는 결코 '쇼'가 아니다. 사기극은 더더욱 아니다. 쇼가 허구에 불과한 데 비해 장대한 의식(儀式)을 동반하는 스펙터클의 정치는 현실에서 장기 지속적 효과를 낳는다. 예컨대 모든 나라가 기리는 자국(自國)의 건국기념일이나 승전기념식은 국가적·국민적 일체감을 키운다. 잘 조율된 스펙터클의 정치가 시민사회의 자발적 지지를 창출한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신(新)냉전 시대의 통념을 깨는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은 거대한 정치적 장관(壯觀)이 아닐 수 없다. 노벨 평화상 얘기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민심을 업은 스펙터클의 정치는 우리의 자아 정체성을 규정하고 사회적 관계까지 재구성한다.

한반도 정세의 구조 변환이야말로 진정한 스펙터클의 정치다. 역사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두 행위자인 미국과 북한이 맞물려 서로의 변화를 재촉하는 실정이다. 세계 여섯 번째 전략 핵국가를 자처하는 북한은 체제 붕괴론을 일축한 채 정권 안보를 굳혔다. 협동농장 포전담당 책임제와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가 상징하는 시장화는 돌이킬 수 없다. 시장화한 북한 경제는 중국이 가세한 국제 제재를 버티지 못한다. 세계 최강국 미국으로서도 전략 핵국가 북한과의 전쟁은 불가능하다. 핵보유국 간 전면전을 막는 상호 확증 파괴의 국제정치 원리는 아직 유효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의 기술'을 입증해 정치적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다. 결국 미·북 간 건곤일척의 타협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판단된다.

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꿈꾸는 중국에 한반도의 안정은 필수다.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회담이라는 스펙터클로 이 모든 역동적 변화를 한 줄에 꿰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 결과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의 동력이 극대화하고 있다. 촛불 시대를 이끈 한국 시민의 정치 효능감이 한반도 역사를 새로이 쓰려는 역사 효능감과 결합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의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는 대장정이겠지만 100년 단위로 시야를 넓히면 그림은 일변한다. 남북이 주권국가로 평화공존 하면서 남·북·미·중·러·일이 동참하는 한반도 2국 체제가 떠오른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대한민국 헌법은 평화통일을 요청한다. '평양 주석궁에 한국군 탱크를 진주시키자'거나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론에 동조하는 주장은 '평화를 위해 핵전쟁을 강행'하자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한반도 전쟁 불사론(不辭論)은 중국의 존재를 무시하는 치명적 약점을 지닌다. 현재 진행형인 중동의 천하대란 상황을 통절한 반면교사 삼아야 마땅하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 외세가 개입한 최악의 내란으로 귀결되면서 국가 전체와 온 민중의 삶이 결딴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이 먼 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한반도 구조 변환을 앞당긴 스펙터클의 정치는 냉정한 현실 인식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국민적 지지를 업고 역사를 바꾸는 스펙터클의 정치에 눈 닫고 귀 막는 건 현실 부정의 몽매주의(蒙昧主義)에 불과하다. 현실을 부정하는 논리는 현실에 의해 부정당한다. 일찍이 철학자 헤겔은 '세계사는 세계 심판이며 역사는 곧 도살장'이라고 갈파했다. 현대 민주정치에서는 여론과 선거야말로 심판의 무대일 것이다. 한반도 냉전체제 해빙(解氷)의 흐름은 부인하기 어려운 압도적 사실이다.

스펙터클 정치의 위력은 미·북 정상회담에서 절정에 이를 것이다. 미·북 수교가 현실이 되면 멸공(滅共)통일론이 서있는 토대는 크게 약화된다. 북한을 승인한 트럼프 때문에 한국의 반공 보수가 공황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친북 대 반북(反北)의 적대적 공존 관계를 해체한 스펙터클의 정치 앞에 진보와 보수의 동반 변화는 역사의 필연이다. 모든 가치와 이념은 현실에서 시작해 궁극적으로 현실로 되돌아와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은 그 누구라도 퇴출의 위기 앞에 서게 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17/20180517031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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