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美北 정상회담 수용 후 CIA 국장 평양 파견하면서 시리아 정밀 타격으로 北 견제
정상회담 안 할 수도 있다 경고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지난 1일 남측 예술단이 평양에서 공연하던 날,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평양에 있었다고 한다. 미·북 정상회담 준비 과정을 잘 아는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그날 '동평양대극장'에서 남측 예술단의 공연 시각이 두 차례 변경된 배경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폼페이오의 만남이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북측은 "더 많은 사람의 관람 편의를 위해" 시간을 바꿨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김정은이 폼페이오와 면담을 마치고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시간을 조정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초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전달한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대화 의사를 전격 수용한 후, 워싱턴에선 "한국이 중간 역할을 잘해줬지만 그래도 미국이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와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을 하는데, 전해 들은 말만을 토대로 회담 준비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국장의 방북은 '김정은이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논의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미국이 직접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던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북 간에 의미 있는 접촉은 거의 없었지만 소통 채널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었다. 2014년 11월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오바마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억류된 미국인을 석방시키는 과정을 보면 폼페이오 방북과 마찬가지로 미·북 간에 긴급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북 간 공식 창구로 알려진 '뉴욕 채널' 외에도 선이 살아 있는 것이다.

폼페이오 방북도 이 같은 미·북 직접 접촉의 결과로, 폼페이오는 CIA 국장 전용기를 타고 미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직접 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의 방북은 김정은의 3월 말 방중 이전에 이미 일정이 잡혀 있었다고 한다. 미·북은 한국을 거치지 않고 미국 일정에 따라 북한과 이미 접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후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정책은 속도와 방향 양쪽에서 허(虛)를 찌르며 질주하고 있다. 지금 워싱턴에 있는 한반도 전문가들의 상상력은 트럼프식 외교와 대북정책 진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잘못되면 다시 군사 옵션이 등장할 것이란 우려, 북한에 또 속을 것이라는 경계,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강조하고 있을 뿐 이 특이한 대통령의 속내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북핵 정책을 추진하는 트럼프의 자신감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대화에 나온 것은 자신의 북한 정책이 성공한 결과라고 굳게 믿고 있다. 외교안보팀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까지 순도 높은 친(親)트럼프파로 채웠다. 게다가 온갖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자신의 구상대로 밀어붙일 수 있는 환경이란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대북 특사단이 트럼프에게 전달한 김정은의 특별 메시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역대 미국 대통령과는 달리 큰일을 할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이었다고 한다. 지난 1년여 트럼프를 겪어본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김정은 역시 '칭찬'과 '인정'을 무기로 트럼프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트럼프의 반응은 시리아 정밀 타격과 언제라도 정상회담을 무산시킬 수 있다는 경고다. 트럼프는 자신이 주도권을 쥐지 않는 회담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북 정상회담은 한 달 넘게 남았지만 트럼프·김정은 간의 보이지 않는 협상은 이미 시작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9/2018041903421.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