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원 논설위원이 만난 美 국제정치 석학 미어샤이머]

"한국, 중국 패권에 올라탔다간 '半주권국가' 신세될 것"
김정은 核포기 가능성은 0~1%… 트럼프와 진짜 만날 지도 불확실

부시·오바마 對中정책은 실패
중국을 세계경제에 편입시키면 민주주의 국가 될 것이라 착각
트럼프도 중국 패권 못 막아
 

이하원 논설위원
이하원 논설위원

'우크라이나의 핵포기는 큰 실수' '북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유명한 존 미어샤이머(John Mear sheimer) 시카고대 교수가 방한했다.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미북 정상회담'과 중국 국가주석 임기 폐지로 외교·안보 뉴스가 주목받는 가운데 20일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주최한 그의 강연에는 1000여 명에 이르는 청중이 참석했다. 좌석이 부족해 상당수가 서서 강연을 들을 정도로 열기가 넘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2시간 넘게 맨 앞에 앉아 경청했다. 최근의 한반도 관련 정세를 진단하기 위한 미어샤이머 교수와의 인터뷰는 21일 오전 7시 15분부터 9시 30분까지 두 시간 넘게 진행됐다. 그는 자신의 국제정치 이론을 바탕으로 한순간도 멈칫거리지 않고 견해를 피력했다.

―20일 강연 후 당신과 대화하려고 늘어선 줄이 30m 넘게 이어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

"사인받으려는 사람은 많은데, 내 이름이 길어서 팔이 좀 아팠다(웃음)."

―최근 시진핑 중국 주석의 임기제한 폐지를 어떻게 보나.

"이 일은 시진핑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시진핑이 종신 주석이 되느냐, 아니냐는 큰 상관이 없다. 문제는 중국이 계속 떠오르고 있으며 부시와 오바마 미 행정부의 대중(對中) 개입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세계 경제에 편입시키면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변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 생각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가 '맥도날드가 있는 나라끼리는 전쟁을 안 한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프리드먼의 생각은 미국 리버럴(진보층)의 전통적인 생각이다. 중국의 부상(浮上)을 억제하기보다는 평화롭게 떠오르도록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 예상이 잘못됐다는 게 시진핑이 종신 주석이 되면서 입증됐다."

―떠오르는 중국이 한반도에 미치는 함의는 무엇인가.

"중국이 아시아에서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패권국가가 된 중국에 한국이 편승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한국은 '반(半)주권 국가(semi-sovereign state)'가 될 것이다."

―반주권국가는 중국의 식민지를 의미하나.

"그런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자율성을 가지지만, 외교·안보 면에서는 마음대로 못하고 중국의 조종을 받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한국은 중국이라는 새장 속에 갇힌 새가 될 것이다."

―중국과 북한 관계의 진실은 무엇인가.

"중국은 북한이 핵을 가진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북한이 미국·일본에 대해 자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더 불만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일본이 핵무장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동북아시아에 더 관심을 쏟게 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연임이 확정됐다. 러시아가 중국처럼 한반도에 위협이 될 가능성은.

"지금 쇠퇴하고 있는 러시아가 과거의 소련이 될 가능성은 없다. 중국의 부상만이 동북아에서 진정한 위협이다."

―당신의 '강대국 국제정치' 이론에 따르면 미·중 간의 협력은 불가능한데.

"중국은 미국이 서구를 지배한 것을 흉내 내면서 아시아를 지배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힘센 국가가 되고 미국을 이곳에서 몰아내는 게 목표다. 그러니 충돌 안 할 수 없다."

―강대국끼리 평화롭게 지내는 건 불가능한가.

" 강대국은 두 개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지역의 패권국이 되는 것과 다른 국가가 자신이 장악하는 지역에서 경쟁자로 떠오르는 것을 막는 것이다. 미·중은 지금 그런 코스로 가고 있다."

―그러면 미·중 간의 전쟁이 불가피하나.

"전쟁 가능성보다는 긴장이 높아질 것이다. 동중국해, 남중국해와 한반도와 대만에서도 부딪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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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21일 인터뷰에서 “중국은 과거 미국이 했던 것을 흉내 내며 지역의 패권 세력이 되려고 한다”며 “동아시아에서 미·중 충돌은 전쟁이 아니더라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고윤호 기자

―트럼프라는 '이단아' 대통령의 출현이 미·중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트럼프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에 맞서서 균형을 잡기 위한 연대(coalition)를 제대로 못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후보 시절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트럼프가 외교를 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구체적으로 트럼프가 잘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국이 패권을 계속 확대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바보같이 중동에서 이란을 자꾸만 중국 쪽으로 몰고 있다. 터키도 그렇다. 지금 무역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고 미·북 정상회담이 5월에 열린다고 한국 정부가 발표했다. 어떻게 전망하나.

"전망보다 먼저 두 사람이 만나 정상회담을 할지 불확실하다. 정상회담 준비가 돼 있는지도 모르겠다."

―트럼프가 만나지 않으려 한다는 건가.

"트럼프는 자신의 참모들과 상의하지도 않고 덜컥 미·북 정상회담을 수락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김정은을 정말 만나고 싶은데 아직 양측이 기본적인 준비도 안 된 것 같다'며 회담 조건을 가지고 실무 회담을 먼저 하자고 하는 게 스마트할 것이다."

―예정대로 만나서 비핵화와 관련돼 괜찮은 합의가 나올 가능성은.

"괜찮은 합의라는 게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이 핵을 포기하는 것인데, 그럴 가능성은 없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핵을 포기하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NSC 최고 책임자는 김정은에게 절대 핵을 포기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북의 핵 포기 가능성이 그렇게 낮나.

"그 가능성은 0.05%로, 0%에서 1% 사이다. 말하기 쉽게 1% 이하라고 하자(웃음). 리비아의 카다피는 바보같이 미국을 너무 믿었다.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한 결과가 무엇이었나. 이런 사정을 아는데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까."

―한국에서는 협상에 따라 북한의 핵 포기가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북한은 절대 하지 않는다. 중국도 그렇게 하라고 압박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전술핵무기가 철수한 것은 냉전해체 분위기에 따른 것인데 잘못된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한 것도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큰 실수였다."

―북이 핵 포기를 않는 상황에서 한국이 가져야 할 전략은 무엇인가.

"핵을 갖고 있는 북한에는 일단 억제(containment)가 최고 전략이다. 함부로 북한 정권 교체 계획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 유엔 제재도 적절하게 하면서 제어해야 한다."

미어샤이머가 말하는 한국의 생존전략은…
"첫째는 韓美동맹, 美의 핵우산 써라"

미어샤이머 교수는 21일 "한국인들은 정말로 통일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가까운 장래에 남북이 통일될 가능성이 낮다. 북한이 통일을 바라지 않고 중국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슨 수로 통일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현실주의자다운 시각을 보여줬다.

―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리한 나라로 한국과 폴란드를 꼽았다. 한국의 생존 전략은.

"폴란드가 지도상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한·미 동맹을 유지하는 게 가장 큰 생존 전략이 돼야 한다. 미국은 한국에서 6000마일 이상 떨어져 영토 욕심이 없다. 이런 나라로부터 핵우산을 계속 제공받는 게 중요하다."

―2004년 발간된 책에서 한국이 핵무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 미국의 핵우산 정책이 변하려고 하면 한국은 자체 핵무장을 고려해야 한다. 그 경우엔 일본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를 평가하면.

"지금까지는 스마트하게 하고 있다. 미·북을 중재한 것은 잘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미·북 간에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열린다고 해도 '해피엔딩'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누구?]

'공격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m)' 국제정치 이론의 주창자. 국가들이 세력 균형에 만족하지 않고 상대적 측면에서 다른 나라를 완전히 압도하려고 한다는 게 주 논지(論旨)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그는 2004년 자신의 대표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한국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한국은 위험한 이웃 국가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동맹 구조, 세력 균형, 강대국의 행동, 핵무기 등의 길고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 미국의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펴낸 '이스라엘 로비'는 전 세계적으로 큰 논쟁을 촉발했다. 미 육사 출신으로 코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21/20180321036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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