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 우선'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 한·미 관계를 '이른바 동맹' 지칭
양국 공조에 '빨간불' 켜지면 심각한 안보 위기 빠지는 건 우리
 

배성규 정치부장
배성규 정치부장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 개막식에 오기 직전이었다. 미국의 한 고위 외교관이 우리나라 전·현직 외교안보 관계자를 만나 상당한 불만과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펜스 부통령 의전(儀典) 문제부터 대북 정책까지 망라된 것으로 알려졌다. 펜스 부통령은 직접 북한 대표단과 동선(動線)이 겹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며칠 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기다리던 평창 개막식 만찬에 불참했다. 개막식장에서 앞뒤로 앉은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도 외면했다. 미·북 양측이 만나도록 하려던 현 정부의 시도는 무산됐다. 그사이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을 네 번 만났고, 총리·비서실장·장관에게도 식사 대접을 받았다.

펜스 부통령이 무조건 대화를 거부한 건 아니라고 한다. 다만 걸핏하면 미국에 '핵 위협'을 퍼붓는 북과 공개리에 악수하는 모양새는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 소식통은 "그럼에도 두 차례나 맞닥뜨리게 된 데 거북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한·미(韓美) 양국 정상 간 통화는 없다.

정부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비핵화를 위한 미·북 대화를 성사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북한의 변덕과 억지는 어느 정도 눈감아 주면서, 미국에는 '이해'를 구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도 미국이 우리를 밀어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誤算)이다. 특히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 시대엔 더더욱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우리는 한국과 무역협정을 협상하고 있으며, 공정한 협상을 하거나 협정을 폐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FTA 폐기를 직접 언급한 것은 지난해 12월 한미 양국이 FTA 개정 협상에 착수한 이후 처음이다. /AP 연합뉴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가리켜 '이른바 동맹(so-called ally)'이라고 했다. 진짜 동맹이 아니라 그저 동맹으로 불리는 관계라는 뜻이다. 트럼프는 이미 "(한국은) 경제적으론 동맹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한국산 세탁기 긴급수입제한조치에 이어 여러 동맹국 중 우리에게만 철강 관세 규제 조치를 내렸다. 한·미 FTA 개정 협상도 어디로 갈지 모른다.

안보 영역에서 다가올 태풍은 더 걱정이다. 정부는 미국의 불만에도 대북 제재에 이리저리 예외를 열어줬다. 이미 한 차례 미룬 한·미 연합훈련이 재연기될 수 있다. 정부는 미·북을 한 테이블에 앉히면 문제가 풀릴 거라고 기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북한은 차치하고라도 미국이 우리 생각대로 따라와 줄까.

미국은 자국 안보가 위태롭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대북 군사적 조치에 나설 수 있다. 한·미 간 심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가능성은 더 커진다.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한반도에 비상사태가 생길 수 있다. 미국은 작년 9월 전략폭격기 B1B를 동해의 북한 코앞까지 출격시켰다. 그전에는 북한 모르게 더 깊숙한 곳까지 보냈다고 한다.

미·북 대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미국은 대화 전환으로 제재·압박이 힘들다고 판단하면, 자신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중단·폐기를 조건으로 북이 바라는 '핵 동결'(기존 핵무기 인정) 카드를 내밀 수 있다"고 했다.

이럴 경우 심각한 안보 위기에 빠지는 건 우리다 . '핵을 머리에 인 채' 미국의 우산도 바라기 힘든 상황을 맞을 수 있다. 한·미 공조를 도외시하다 미국이 한반도 전략을 바꾸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안보 청구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남북대화도, 미북 대화도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북핵을 해결해 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은 곤란하다. 지금 가장 주시해야 할 건 한·미 동맹의 '빨간불'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18/2018021801647.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