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애커먼 '새들의 천재성'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탁란조(托卵鳥)인 뻐꾸기는 알이 있는 뱁새 등 숙주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하나 낳아놓고 간다. 뱁새는 둥지의 알을 모두 정성껏 품는데, 뻐꾸기 알이 제일 먼저 부화해서는 눈도 제대로 뜨기 전에 둥지에 있는 뱁새의 알을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린다. 그리고 뱁새가 물어오는 먹이를 혼자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뱁새는 뻐꾸기 새끼가 자기보다 덩치가 몇 배로 커져도 자기 새끼로 알고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우고 비행 훈련을 시켜 떠나 보낸다.

얼마 전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이 모습을 보고 북한의 소행이 꼭 뻐꾸기 같다고 생각했는데, 북한 매체들이 '남조선 당국자들이 가을 뻐꾸기 같은 수작을 한다'고 했다는 보도를 보고 실소(失笑)가 나왔다. 지금 북한은 우리가 삼수(三修) 끝에 어렵게 따내서 온갖 정성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평창올림픽을 며칠 사이에 평양올림픽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절대적 지지와 협조 아래.

북한은 경기에서 뛸 선수는 몇 없는데 수백 명의 공연단, 응원단으로 평창을 점령하고 남한 국민의 혈세로 먹고 마시며 그들의 체제 선전 잔치를 거하게 하겠단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그들을 최고급으로 먹이고, 재우고, 체제 선전 무대를 화려하게 마련해 주는 것으로는 부족해서인지 북한까지 올라가서 마식령스키장과 금강산을 북한의 관광 자원으로 홍보해 주겠단다. 그리고 우리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은 연기하고, 북한의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는 지켜볼 모양이다.

아무리 황송하게 받들어 모셔도 김정은 일당에게서는 조롱과 모욕, 더 지독한 핵 공갈밖에는 돌아올 것이 없음을 진정 모르는가? 마침내는 우리 선수를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려 북한 선수를 들이고 둥지에 '뻐꾸기' 깃발을 꽂아 둥지마저 헌상(獻上)하려 하니 뱁새는 다 시 자기 둥지에 몸을 누일 수 있을까?

제니퍼 애커먼의 '새들의 천재성'을 보면 뻐꾸기는 갓 낳아서는 뇌 용량이 다른 새 새끼들보다 큰데, 숙주 어미의 알들을 떨어뜨려 죽여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다음엔 뇌가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영어에서 cuckoo는 '얼간이'의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다가 뻐꾸기에게 조종당하는 뱁새의 새끼들이 되었을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2/20180122026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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