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이 北에 일방적 양보할 경우 한·미 FTA 폐기, 美軍 철수할 수도
'워싱턴에 대한 北 핵 위협' 제거가 트럼프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
미국 입장이 한국과 달라진다면 對北 독자 행동 가능성 높아질 것
 

수미 테리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 연구원
수미 테리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 연구원
새해 들어 남북한 간에 약간의 긴장 완화가 이뤄지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다소 누그러진 신년사를 발표한 후 2년 만에 남북 고위급 회담 개최에 동의했고 평창 동계올림픽에 고위급 대표단을 보내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만일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을 계속한다면 전멸(全滅)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하며 대북 강경 노선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패럴림픽 이후로 연기하는 데 동의했고, 최근 인터뷰에서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갖게 될 것"이라며 북한과의 외교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도 내비쳤다.

또 다른 한국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재앙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남북 긴장 완화를 환영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과 소통 창구를 열기 위해 노력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냉전 시기에도 미국과 러시아는 우발적 핵전쟁을 막기 위해 핫 라인을 가동했다.

북한 독재 정권은 그러나 대가(代價) 없이 무언가를 내놓은 적이 없다. 대화 의지를 피력하면서 그 대가로 엄청난 양보를 요구해왔다. 북한은 남한에 공격을 가하고 그걸 중단하는 대가로 지원을 요구하는 등 갈취 행위를 해왔다. 한국이 '햇볕정책'을 추진하던 시기에 80억달러 이상의 보조금과 경제 지원이 한국에서 북한으로 흘러들어 갔다. 어떤 것도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과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유린을 막지 못했다.

요즘 북한은 제재로 인한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지원을 받아 제재를 강화해왔다. 김정은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손을 내미는 것은 이런 제재를 완화해보려는 시도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11월 7일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가진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남북 간 대화가 재개된 지금 시점에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이 놓은 덫을 피해야 한다. 북한이 한국으로 하여금 북측에 일방적으로 양보하도록 상황을 몰아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북한 정권이 위험하고 파괴적인 행위를 계속 하도록 용인해주고, 무엇보다 핵과 미사일 시험을 통해 꾸준히 국제사회를 위협해온 북한에 대해 적절한 조치 없이 양보를 해준다면 그 자체가 한반도를 둘러싼 또 다른 갈등을 촉발할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만일 한국이 북측에 행동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일방적인 양보를 할 경우 미국과의 관계가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란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폐기할 수도 있고,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부담하지 않는다면 주한 미군을 철수할 가능성도 있음을 암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그런 위협을 구체적으로 실행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무엇을 할지 알 수 없는 예측불허의 정치인이다. 만일 한국이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약화시키려 하는 것으로 판단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구상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한국 방문 중 국회에서 했던 감동적인 연설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미국 우선'이다.

그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워싱턴에 대한 북한의 핵 위협을 막는 것이다. 만일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트럼프는 73년 된 한·미 동맹을 버리는 일도 주저하지 않을지 모른다.

반면 북한의 숙원은 한·미 동맹을 깨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과 원칙에서 균열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한·미 동맹을 강하게 유지할 때 한국은 안보와 번영을 더 잘 유지할 수 있다. 미국의 방어 공약이 없다면 남한은 스스로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남북한과 일본·중국 4개국이 핵 군비 경쟁에 나서게 됨을 뜻한다.

만일 한국이 미국과 입장이 같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독자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심지어 북한에 대한 선제적인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 대북 제재 등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춤으로써 문 대통령은 미국의 급작스러운 행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대북 제재는 이제 막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란의 사례가 보여주듯 평양이 검증 가능한 핵 동결이나 핵무기 프로그램 해체를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압력을 느끼려면 앞으로 몇년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뭔가를 양보해줘선 안 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7/20180117030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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