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북한군 병사 1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는 과정은 자유를 향한 기적의 대탈주였다. 어제 유엔군사령부가 공개한 CCTV와 열상 감시 장비(TOD) 영상을 보면, 귀순병을 추격하던 북한 경비병들은 손에 잡힐 듯한 가까운 거리에서 동료의 등 뒤로 총질을 시작했다. 귀순병이 군사분계선(MDL)을 지나 남측으로 완전히 넘어온 뒤에도 조준 사격을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 추격조 중 한 명은 분계선을 넘기도 했다. 귀순병이 쓰러진 뒤에도 확인 사살하듯 발포했다. 귀순병이 탈출해 살아난 것 자체가 기적이다. 영화도 이보다 더 극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탈주 이후 우리 사회에선 어이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귀순병을 살린 이국종 아주대 교수를 향해 '인격 테러'라며 비난했다. 이 교수가 귀순병의 몸 안에서 엄청난 양의 기생충이 발견됐고, 먹은 것이라곤 옥수수 조금뿐이었다고 공개한 것을 프라이버시 침해이자 의료법 위반이라고 문제 삼은 것이다.

정의당은 인간 지옥과 같은 북한의 인권 실상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 북한인권법도 반대했다. 그런 당의 의원이 귀순병 몸 상태를 통해 북의 참혹한 실상이 다시 한 번 드러나자 인권을 말하며 반발했다. 민주 사회엔 온갖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경우에는 말문이 막힌다.

지금 귀순병에게 최대 인권은 북한 탈출 성공과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 일을 해낸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지는 못할망정 비난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귀순병 치료 과정에서 북의 실상이 드러났다면 그것은 북한 주민 전체 문제이자 통일 후엔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된다. 모두가 알아야 할 내용이다. 숨길 문제가 아니다.

서울대 의대 통일의학센터가 북한 금강산 온정리를 찾아가 주민들 기생충 검사를 했더니 95%가 기생충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인분을 비료로 쓰는 데다 구충제가 부족하고 전반적 위생 상태가 최악이기 때문이다. 출신 성분이 좋고 엘리트 대접을 받는 JSA 북한 병사마저 옥수수로 연명한다는 사실은 북한의 식량난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말 인권을 중시한다면 귀순병 몸 안의 심각한 기생충과 옥수수를 보고 북한 정권의 실패와 주민 탄압을 고발해야 한다.

우리 진보 진영은 국내의 인권 문제에 대해선 과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적극적이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선 이상하리만치 눈을 감는다. 노무현 정부는 5년간 유엔 북한 인권안 표결에서 불참→기권→기권→찬성→기권의 기록을 남겼다. 2006년 유일한 찬성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해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보 진영은 2005년 상정된 북한인권법도 11년간이나 막고 있다가 지난해에야 누더기로 통과시켰다. 그나마 북한인권재단 출범도 막고 있다. 정의당 의원이 이 교수를 비난한 진짜 이유는 귀순병의 인권이 아니라 그로 인해 북한 실상이 드러난 점이었을 것이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2/20171122033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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