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쪽 안산(鞍山)의 산줄기에 '스미스 능선'이란 별칭(別稱)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이곳에선 6·25 때 북한군과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연합군은 연희 고지 전투에서 이겨 중앙청에 태극기를 휘날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군 피해도 컸다. 특히 미 해병 5연대 D중대는 전멸하다시피 해가며 고지를 탈환했다. 중대장 스미스 중위는 마지막 돌격을 이끌다 전사했다.

▶주한 미 육군의 핵심인 의정부 미 2사단 기지는 '캠프 레드 클라우드'라고 불렀다. 인디언 출신으로 6·25에 참전했던 레드 클라우드 상병 이름을 땄다. 그는 평안도 청천강에서 야간 보초를 서다 중공군의 대규모 기습과 맞닥뜨렸다. 자동 소총으로 적을 공격하다 부상을 입자 자기 몸을 나무에 묶고 버티면서 공격을 계속했다. 그가 시간을 번 덕에 미군이 반격에 나서 중공군 기습은 실패로 끝났다. 다음 날 아침 총알 여덟 발을 맞고 전사한 그의 주변엔 중공군 시신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만물상] 이름 불러주는 나라

▶선진국을 가르는 기준은 여럿 있을 수 있다. 그중 하나는 나라 위해 몸 바친 이들의 고귀한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파주의 캠프 에드워드, 대구의 캠프 조지, 용산의 캠프 코이너는 모두 6·25 참전 병사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린 것이다. 런던 세인트폴 성당에는 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을 위해 전사한 미군 2만8000명 이름이 실린 책자가 전시돼 있다. 성당 측은 매일 이 명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전사자 이름이 햇빛을 보게 한다고 한다.

▶엊그제 평택 미군 기지에 한국계 병사의 이름을 딴 병원이 문 열었다. '김신우 병장 군 응급의료센터·치과병원'이다. 김 병장은 2007년 이라크 전쟁 때 의무병으로 참전했다. 병력 이동 중 적으로부터 수류탄이 날아오자 몸을 던졌다. 그 덕에 많은 전우가 목숨을 지켰다. 명명식에는 주한 미8군 사령관이 참석했다.

▶미국 LA에는 '김영옥 중학교'란 공립학교가 있다. 2차대전 때 유럽 전선에서 무공을 세우고 6·25에도 참전했던 한국계 김영옥 대령을 기린 이름이다. 그는 고아·입양아·노인·빈민을 위해 만년을 바쳤다. 김영옥 이야기는 2 011년 우리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가 재작년 빠졌다. 그가 미국 시민권자이고, 미군 장교로 6·25에 참전한 게 문제됐다고 한다. 사회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한다는 것은 공동체를 위한 그의 정신을 전승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다. 우리에게도 많은 이름이 있다. 그런데 이름을 잊고 욕보이고 지운다. 남는 이름이 얼마나 될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3/20171023029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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