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억지력 중요한 때에 전작권 '환수'에 나서고
글로벌 경쟁력 경쟁 시대에 손에 쥔 원자력 기술 외면
과거사 두고 집안 싸움에 우방과 정보 협력도 못할 판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금의 안보 상황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 이렇더라도 내부가 제대로 결속되고 단합된다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이 현 안보 상황에서 해야 하고 또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정부는 당장 추진해야 할 안보정책은 방치한 채 정작 피하거나 시간을 두고 신중히 검토해야 할 사안들은 결론부터 정해놓고 서두르고 있다. 안보만큼은 국민이 단합하자고 하는데 '과거 적폐' 논쟁의 핵심 이슈들은 안보 문제와 맞물려 있고, 국민의 마음은 좌와 우로 선명하게 쪼개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어떻게 할 수 없는 안보 여건'이란 북한 당국과 어떻게든 대화를 시작해보려고 했지만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도발로 고조된 한반도 안보 정국이 원망스럽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지금은 군사 옵션을 포함한 전(全)방위의 대북 국제 압박 공조만이 필요할 뿐이라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확고한 입장에 혹시나 미·북 설전(舌戰)이 한반도의 우발적 군사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포함돼 있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로 여전히 '뿔이 난' 상태로 문 대통령 취임 첫해의 중국 방문은 어림도 없어 보인다.

지금 한국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할 안보정책은 대북 군사 억지 태세를 튼튼히 하는 것이다. 국방 전력화 사업 46개 중 40개가 예정보다 평균 4년씩 지연되고 있다. 북한 지휘부를 겨냥한 '참수부대'를 만든다고 하면서 작전에 필요한 수송기, 무전기, 무인기의 구비 계획은 없다. 문 정부의 임기 안에 포병대와 도하 대대가 창설될 계획인데 그 핵심 전력인 개량 곡사포와 도하 장비의 전력화 일정은 문 정부의 퇴임 이후로 연기되었다. 한국의 미사일 방어책은 북한이 우리 쪽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에 선제 타격하고(Kill-Chain), 발사한 이후에 격추하고(KAMD· 한국형 미사일 방어망), 북한 지도부를 응징하는(KMPR·대량 응징 보복) 정밀 타격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3축 체계는 미국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정찰, 탐지, 표적 식별 능력의 도움 없이는 작동 불가능하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고, 그래서 한반도의 전쟁을 가장 확실하게 막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미 연합사령부 체제다. 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듯이 문재인 정부 역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전환이 맞는 표현임)'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 국가들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해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을 유럽 안보의 마지막 안전장치로 삼고 있다. 하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위험 수치로 치닫는 이때 한국이 전쟁 수행의 주체 문제를 자존심과 주권 차원에서 접근할 만큼 한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 자신보다 군사력이 열등한 동맹국 사령관 밑에 들어와 싸워 주겠는가. 정작 북한이 노리는 것은 한반도에서 미국과 미군의 존재를 최대한 배제하고 한국 정부를 전쟁할 의지가 없도록 유도한 뒤, 무방비 상태가 된 한국 시민을 접수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호응해 주지 않는 평화주의는 무용지물이다. 북한 정권은 한국 안보의 손과 발을 묶고 한국 사회를 이간질하고 분열시키는 데 매진해 왔다. 대화하고 협력하여 신뢰가 구축되면 핵 문제도, 한반도의 평화도 모든 것이 풀린다는 가설은 현행 북한 지도부 체제하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은 한국이 자신의 힘과 실력을 기르면서 김정은 정권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고 북한 내부의 변화를 유도해내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 글로벌 사회에서는 미래의 정치·경제 질서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지속되는데, 이미 손에 쥔 원자력 에너지 주도권을 버리느니 마니 하는 문제로 논쟁할 때가 아니다. 미국이 북한의 재외공관 폐쇄를 유도하고 외화벌이 자금줄을 차단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남의 일 보듯 하면서 집안 싸움에 여념이 없다.

정보기관을 포함한 모든 국가 공무원 조직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상위에 있는 국가 조직의 수행 덕목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이익을 온전하게 추구하고 대변하는 일이다. 문 정부는 과거의 우파 정권들을 단죄하기 전 에 자신들이 과거에 북한과 미국에 관해 어떠한 언행을 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정부 부처의 내부 기록을 샅샅이 들춰내 필요한 것만 세상에 공개한다면 어느 공무원이 소신을 갖고 열심히 일하겠는가. 고도로 민감한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해야 할 미국과 우방의 정보기관 파트너들이 이렇게 무너져가는 우리 국가정보원과 어떤 협력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15/2017101502027.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