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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노동자들, 구충제·비타민 사들고 도망치듯 떠났다

기사승인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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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중동 외화벌이 짐싸는 북한

"평양 가냐" 약국서 묻자 "맞다"
제재·조기 귀국 꺼내니 '버럭'… 주요 구입약 품목엔 비아그라도
비자 갱신 막은 유엔 제재 효과, 밀주 '싸대기' 생산·판로도 끊겨
"뇌물 바쳐 중동 왔는데 빈털터리"
 

23일(현지 시각) 오전 11시 30분쯤 쿠웨이트 수도 메디나쿠웨이트 북부의 한 허름한 상가 앞에 모래 먼지를 뒤집어쓴 중형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면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북한 남성 2명이 내리더니 상가 1층 약국으로 향했다. 승용차 앞좌석에 선글라스를 끼고 앉은 남성이 차창을 내리고 소리쳤다. "날래날래 갔다 오라우!"

약 10㎡인 약국 안에선 히잡(이슬람식 여성용 머리 스카프)을 쓴 이집트 약사와 남아시아계 남성 직원이 북한 남성들의 주문을 받았다. 기자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자, 북한 남성 2명 중 1명이 약품을 급히 봉지에 넣으며 "너 대한민국(사람)이니?"라고 했다. '평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것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이어 '제재 때문에 조기 귀국하게 된 건가' 하고 묻자, "몰래 녹음하고 있으면 치우라"고 벌컥 화를 냈다. 약국 밖에서 "빵~빵~" 하고 경적이 울렸다. 깜짝 놀란 이들은 약값을 치르더니 뛰어나갔다.

이 약국은 쿠웨이트 거주 북한 사람들의 단골 가게라고 한다. 간판에는 약국 이름 '그라나다'가 영어·아랍어와 함께 한글로도 적혀 있었다. 약사에게 '방금 북한 사람들이 뭘 샀느냐'고 묻자, 주문대 위의 종이를 슬쩍 가리켰다. 북한 사람들이 자주 찾는 약품 70여 종 이름이 영어와 한글로 나란히 쓰여 있었다. 'Anti worm/구충제' 'Nootropil/뇌질환 후유증' 'Baby Vitamin/어린이 비타민' 등 일반 약품이 대부분이지만, 성인용 약품도 보였다. 약사는 "본인이 아파 약을 사기도 하지만, 주로 귀국 직전에 선물용으로 챙겨 간다"면서 "요즘 약국을 찾는 북한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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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인 중동(中東) 파견 북한 노동자들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대거 철수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지난 21일(현지 시각) 카타르 수도 도하 남쪽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밀집지역의 쇼핑몰 ‘사파리(Safari)’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여행용 가방과 신발 등을 고르는 장면이다. 오른쪽 위 사진은 북한 노동자들이 단골로 찾는 쿠웨이트 외곽의 한 약국 진열장에 ‘우리를 많이 찾아주세요’ 등 한글 문구가 나붙은 모습이다. 이 약국에 비치된 B4 크기 종이에는 ‘Anti worm/구충제’ ‘Nootropil/뇌질환 후유증’ 등 북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의약품 70여 종이 영어와 한글로 적혀 있다(오른쪽 아래). /도하(카타르)·쿠웨이트=노석조 기자
남아시아계 직원은 "북한 건설 노동자는 주로 구충제나 어린이 비타민을 사 가지만, 정장을 입고 가슴 한쪽에 빨간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단 사람들은 비아그라 등 고가 제품도 잘 사 간다"고 했다.

쿠웨이트 내 북한 노동자들이 대거 철수하면서 북한은 인건비뿐 아니라 밀주(密酒) 매매 수입도 끊기게 됐다. 이곳 북한 노동자들은 지난 10년간 일명 '싸대기'로 불리는 밀주를 조직적으로 만들어 매년 수백만달러를 챙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싸대기 1ℓ(리터)는 약 30달러에 거래된다. 이슬람이 국교인 쿠웨이트는 술 판매를 엄격히 금지하기 때문에 약 290만명에 이르는 해외 노동자 등은 '암시장'에서 밀주를 구입해왔다. 북한 노동자들은 최근 쿠웨이트 내 '싸대기' 생산 설비를 인도 측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제 '싸대기'를 밀거래하는 한 인도인은 "북한 노동자들이 조기 귀국 조치 때문에 크게 화가 나 있다"면서 "뇌물 바쳐서 겨우 나왔는데, 돈도 못 벌고 들어가게 됐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쿠웨이트 대형 건설업체 '알하사위'의 관계자는 "최근 한 이집트 노동자가 '김정은은 왜 핵무기를 개발하느냐'고 농담조로 말했다가 북한 노동자 30여 명에게 포위돼 몸싸움을 한 일도 있었다"며 "북한 사람 모두 상당히 예민한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또 "과거에는 같은 건설 노동자라면 북한 노동자 숙소 근처에 갈 수 있었는데, 최근엔 근처에 오지도 못하도록 경계를 삼엄하게 서고 있다"고 했다.

현재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지역에 남은 북한 노동자 약 3000명은 대부분 남강건설 소속으로 알려졌다. 남강건설 직원들은 모두 북한군 출신으로, 다른 북한 노동자들의 탈주나 폭동 등을 막기 위해 파견됐다고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그러나 남강건설도 미국 등의 제재 대상이어서 이 회사 직원들도 짐을 싸고 있다.

지난 21일 카타르 수도 도하 남부 이주 노동자 거주지의 쇼핑몰 '사파리(Safari)'에서 만난 20대 북한 노동자 7~8명은 여행용 가방·신발 등을 고르고 있었다. 무리에서 잠시 혼자 떨어져 나온 북한 노동자에게 '귀국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고른 갈색 가방을 들고 "검은색보다 이게 낫지 않으냐"고 물으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뒤 동료들이 다가오자 돌변했다. '추석을 고향에서 보내게 됐는데 좋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인상을 쓰다가 동료들과 함께 기자를 둘러싸고 몸을 툭툭 부딪치더니 곧바로 자리를 떴다. 현지 소식통은 " 중동의 북한 노동자들은 올 연말쯤이면 대부분 떠나고, 현지 건설사로부터 잔금을 받아야 하는 일부 간부급만 남을 것 같다"며 "앞으로 북한 해외 노동자들은 중국이나 러시아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해외 노동자 파견을 통한 북한의 외화벌이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27/2017092700311.html

조선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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