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체결 땐 "매국" 비난하더니 한·일 군사정보협정 1년 연장
정부, 과거사·안보 분리 기조… 안보 환경, 한·미·일 협력 절실해
 

최재혁 논설위원
최재혁 논설위원

지난달 한·일 두 나라가 군사 정보를 공유하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1년 연장됐다. 북한 빼고 조용했다. 박근혜 정부가 작년 11월 탄핵 국면에서 이 협정을 체결했을 때 우리 내부가 떠들썩했던 것과 비교하면 '같은 나라 맞나' 싶을 정도다. 북한의 선전 매체들만 "천년 숙적과의 추악한 공모 결탁" "극히 위험하고 범죄적인 사대 매국 협상"이라 맹비난했다.

9개월 전에는 당시 야당이 비슷한 주장을 했다. 지금은 집권당이 된 민주당의 원내대변인은 "밀실, 졸속, 굴욕의 협정"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트위터에 "국무회의가 의결할 것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아니라 대통령 해임건의안"이란 글을 올렸다. 그 당의 다른 대선 주자는 "퇴진 위기에 몰리면서도 매국 본능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라고 조롱했다. 국방부가 역사 문제도 중요하지만 임박한 북한 핵무장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했지만, 야당은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추진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민주당은 '효용성 검토 후 연장 여부 결정'을 공약으로 걸었다.

결국 '협정 연장'으로 결론이 났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안보 상황을 생각하면 어차피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다. 결말이 뻔했다는 점은 사드와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중국 같은 훼방꾼이 없어서인지 한·일 GSOMIA 연장은 소리없이 이뤄졌다. 사드처럼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괜한 분란을 만들지도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 관계 기본 방향은 과거사와 안보 문제는 분리 대응하겠다는 쪽인 것 같다. 사실 그 외 다른 길은 보이지 않는다.

2016년 11월14일 오후 국회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에 관한 3차 실무협의를 개최하고 가서명을 하는 것과 관련, 야당 국방위원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조선일보 DB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미국은 한·일을 상대로 '사이 좋게 지내라'고 압박해 왔다. 안보상 필요성이 컸다. 버티던 한·일 정상이 손을 잡게 된 것은 북핵 위협 때문이었다. 이는 지난 7월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반영됐다. 공동성명엔 '북한 핵에 직면해 3국 안보 협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일본을 파트너로 한 '안보 협력'은 국내 정서를 감안해 이전 정부에서는 명문화를 꺼리던 표현이다. 그때만 해도 문 대통령이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남북 관계를) 주도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이던 시기였다. 북한만 잘 설득하면 역내 긴장 수위도 내려갈 것이라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ICBM 발사, 6차 핵실험으로 김정은은 완전히 반대로 갔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미 행정부·의회·싱크탱크의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났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안감이 예상보다 깊었다. "중국이 체념하고 있었는데 한국이 사드 배치에 시간을 끌어 중국에 한국을 괴롭힐 기회를 줬다" "한국이 북한에 대화 제의를 하며 이틀 전에 알려줬다.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 그 과정에서 나온 얘기가 한·미·일 안보 협력이었다. 중국이 계속 북·중 관계에 집착하면 미국으로선 한·일의 탄도미사일, 대잠(對潛) 방어 체계를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한국의 해상 미사일 방어 능력을 미·일의 수준으로, 한국 해군의 대잠 작전 능력을 일본 자위대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미·일 합동훈련도 수반된다. 서울과 워싱턴, 도쿄와 워싱턴 간에 이런 협의가 진행 중이란 얘기가 언론을 통해 일부 알려졌지만, 실제 접하니 미국 쪽 의지가 강해 보였다.

북한 ICBM의 실질적 위협에 미국이 다급해지면서 외교·안보 전문가들 머릿속에 있던 시나리오가 현실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한·미·일, 삼각(三角) 군사 협력의 고도화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실제 미국이 요구한다면 국내 진보·좌파 진영은 물론 중국이 '미국 MD(미사일 방어)체제 편입'이라고 반발할 것이다. 일본과의 군사 협력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주는 다른 측면도 같은 무게로 논의해야 한다. 매국(賣國)이니 친일(親日)이니 하며 공방을 벌일 만큼 우리 안보 현실이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21/20170921035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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