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대북 군사·적십자 회담 제의에 미국이 즉각 반대하고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미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를 위해) 충족해야 하는 조건에 대해 명확히 해왔는데, 이 조건들은 지금은 우리가 있는 위치와는 분명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했다. 외교적 수사가 아닌 직설적 언급이다. 미 백악관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게 우리 정부의 남북 대화 제의에 반대한 것이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 나설 때만 대화가 가능한데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도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미국의 이런 입장은 지난달 30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채택된 공동성명에 기반하고 있다. 문재인, 트럼프 두 대통령이 합의한 성명은 "올바른 여건하에서(under the right condition) 북한과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명시했다. 미국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도발을 불과 얼마 전 자행한 현 상황이 남북 대화의 올바른 여건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남북 대화는 유엔의 제재를 약화시키고, 위기에 몰린 북한 정권을 회생(回生)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17일 우리 정부의 성급한 남북 대화 제의는 적절하지 못했다. 백악관도 우리 정부에 불만이 있더라도 외교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나았겠지만 어쨌든 불협화음은 표출되고 말았다. 지난달 한미 정상 회담 이후 불과 3주만에 한미 간 이견이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상황이 돼 버렸다. 어차피 잘 맞지 않는 양국 정부이지만 예상보다 더 이른 갈등이다. 북한의 김정은은 이런 상황을 보고 웃고 있을 것이다. 심각하게 여겨야 할 문제다.

문 대통령은 "우리에게 북핵을 해결할 힘이 없다"고 솔직히 토로했다. 그렇다면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각 협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게 하고 종국적으로 중국까지 동참하게 하는 지혜를 발휘해야만 한다. 남북 대화도 시기 와 상황을 보는 신중함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미국과 충분한 사전 협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새 정부는 마치 무슨 남북 대화 조급증에 걸려 안달하는 사람들 같다. 대북 정책마저 탈(脫)원전이나 최저임금 문제처럼 밀어붙이면 된다는 건가. 한미 간 공조 균열은 김정은 정권만 이롭게 한다. 미국도 동맹 간 내부 논의로 이견을 걸러내는 인내와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8/20170718036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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