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한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 중단만 해도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및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특보는 워싱턴 DC의 강연에서 "미국이 왜 칼빈슨호를 한반도에 배치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미 전략자산의 축소 배치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말한 것"이라고도 했다.

문 특보의 생각은 남북 간 대화를 풀어보려고 하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문 특보의 발언이 "한국 정부의 공식 정책을 반영한 게 아닐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다. 문 특보의 발언은 한반도 문제의 책임을 북한뿐 아니라 미국도 함께 져야 한다는 중국의 입장과 유사하다. 중국은 북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군사훈련을 동시에 멈추는 것을 의미하는 '쌍중단(雙中斷)'을 주장해왔다.

미국이 항공모함, 전략 폭격기를 포함한 전략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전개한 것은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두 차례 핵실험을 한 데 이어 현 정부 출범 이후엔 1주일에 한 번꼴로 탄도미사일을 쏘았다. 유엔 안보리에서 지난 15개월 동안 이례적으로 3개의 대북 제재안을 잇달아 채택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전략자산 전개와 한·미 연합훈련 축소라는 중대한 안보상의 카드를 겨우 북한의 도발 중단 단계에서 던져버린다는 것은 적절하냐는 여부를 떠나서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 단계에 명백하게 들어선 단계에서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하자 한·미는 팀스피릿 연합훈련을 중단했다. 그 결과로 지금 남은 것은 북한 핵폭탄 수십 발이다.

북이 도발을 하지 않는다고 핵과 미사일 위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북은 핵탄두 소형화 완성 단계이고 우리를 공격할 탄도미사일은 이미 다양한 종류를 완비하고 있다. 이 위협의 본질이 그대로 있는데 우리가 가진 방어 역량과 협상 카드의 핵심을 싼값에 넘기면 김정은조차 놀랄 것이다. 대화를 구걸하면 이용만 당하고 결실을 보지 못한다.

문 특보는 또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으면 대화를 안 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어떻게 우리가 수용하느냐"라며 "사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 동맹이 깨진다는 얘기가 있는 게 이게 무슨 동맹이냐"고도 했다. 미국은 비핵화하지 않으면 대화를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가 전제돼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사드 때문에 한·미 동맹이 깨질 일은 없겠지만 상호 신뢰에 금이 가고 약화되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문 특보는 한때 외교부장관, 청와대 안보실장 물망에 오르다가 청와대 특보에 임명됐다. 현 정부의 외교 막후 실세라고도 한다. 청와대는 이날 문 특보의 강연에 대해 '청와대 공식 입장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문 특보의 이런 생각이 문 대통령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 특보가 민감한 정책 사안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대놓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축사에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지 않더라도 핵·미사일 도발만 중단하면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바 있다. 이 역시 미국과는 차이가 있다.

한·미 정상회담이 다음주로 다가왔다. 이번 회담은 여러 불안 요소들이 잠복해 있다. 양쪽 정부 자체가 서로 잘 맞지 않는다.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안보 참사'가 될 수 있다. 이런 시기라면 대통령 특보와 같이 중요한 직책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라고 자신하더라도 말을 줄이고 가리는 절제가 필요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18/20170618022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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