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전주, 우충원 기자] 26년만의 승리는 비장함이 아닌 자유분방함과 승부욕의 결정체였다.

한국은 2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아르헨티나와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A조 조별리그 2차전서 이승우와 백승호가 한 골씩 합작하며 2-1 승리를 거뒀다. 이날 한국과 공동 1위였던 잉글랜드가 기니와 무승부에 그쳐 한국은 단독 선두에 등극했다. 한국은 3차전 잉글랜드전 결과와 상관 없이 최소 조 2위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26년만의 짜릿한 승리였다. 그동안 아르헨티나 U-20 대표팀과는 친선경기를 많이 펼쳤다. 그러나 세계선수권, 월드컵에서는 26년만의 맞대결이었다. 특히 한국은 남북 단일팀이 26년전 승리를 챙긴 기억이 있다.

지난 1991년 6월 15일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 본선에서 아시아 정상 자격으로 참가한 남북 단일팀 '코리아'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0의 승리를 거뒀다. 북한에서 합류한 조인철이 터트린 결승골에 힘입어 짜릿한 승리를 챙겼다.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당시 감독은 북한의 안세욱이었고 한국은 코치를 맡았다. 남북 단일팀 코리아는 한국이 수비 중심을 맡았고 공격은 주로 북한 선수들이 나섰다. 치열하던 경기서 조인철은 후반 43분 짜릿한 결승골을 터트리며 승리를 이끌었다. 그 후 한국은 당시 대회서 다시 승리를 맛보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전 승리 포함 1승 1무 1패를 기록한 한국은 8강전서 브라질에 1-5로 패했다.

그러나 코리아팀은 대단히 진지했다. 청소년 팀이었지만 정신무장은 최고였다.

26년만에 한국 청소년 대표팀은 아르헨티나를 만났다. 비록 단일팀은 아니었지만 정예멤버를 구축해 세계 축구계를 호령하는 아르헨티나를 상대하게 됐다. 조추첨 당시 한국은 개최국이지만 까다로운 팀들과 만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른바 죽음의 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20세 이하 대표팀은 부담이 컸다. 수비진의 실점이 많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첫 경기서 운이 따랐다. 물론 실력으로 승리를 거뒀지만 때마침 늦게 한국에 입국한 기니 사정에 따라 주력 선수들이 출전하지 않았다. 상대의 전력이 완벽하지 않은 곳을 한국은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고 짜릿한 3-0의 대승을 챙겼다.

아르헨티나는 첫 경기서 잉글랜드에 0-3으로 완패했다. 하지만 점유율 및 경기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도 부담이 컸다.

그러나 신태용 감독은 수비 안정을 꾀한 뒤 적극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그 중심에는 이승우와 백승호가 있었다. 단순히 골을 터트린 것 뿐만 아니라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특히 아르헨티나를 추락시키는 첫 골을 터트린 이승우는 왜 자신이 천재인가를 스스로 증명했다. 중앙선 부근에서 조영욱의 패스를 받은 그는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서 리오넬 메시가 한국 수비를 유린했던 것처럼 아르헨티나 수비를 끌고 다닌 뒤 골을 기록했다. 전광석화 같은 돌파에 이은 화려한 슈팅이 골로 연결됐다.

또 한국은 백승호가 침착하게 페널티킥을 성공, 2-0으로 달아났다. 당시 조영욱은 저돌적으로 달려 들었다. 그 결과 골키퍼 펀칭으로 페널티킥을 이끌어 냈다. 조영욱은 경기 후 "선수들 모두 생각없이 '대가리 밖고' 경기하자고 했다. 그래서 그 생각밖에 없었다. 상대 골키퍼가 나오는 것을 보고 달려 들었고 부딪혔지만 페널티킥으로 이어져 기뻤다"고 말했다.

비록 한국은 후반 중반 아르헨티나에게 만회골을 허용한 뒤 상대의 공세를 겨우 막아냈다. 송범근은 날라 다녔고 수비는 육탄방어를 펼쳤다.  그 결과 한국은 짜릿한 2연승을 챙기며 사상 최초 2연승으로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백승호의 골 당시 그의 세리머니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상 쐐기포였기 때문에 비장함이 가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라도나에 대한 패러디라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마라도나는 지난 3월 15일 U-20 월드컵 조 추첨식에서 한국을 뽑은 후 활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고국 아르헨티나가 한국과 같은 조에 묶인 것을 반기는 표정이었다. 백승호는 이를 두고 한 인터뷰에서 불편한 심정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면서 마라도나의 웃음을 후회하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하지만 세리머니는 단순했다. 백승호는 "축구를 하는 친한 누나들이 응원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표를 잘 못 사서 못 왔다. 왜 그랬는지 묻고 싶어 한 거다. 마라도나는 절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비장함과는 거리가 먼 상황.

 

팀 분위기는 다르고 세대도 다르지만 26년만의 재대결은 분명 한국이 승리했다. 역대전적서 4승 3무 1패로 한국이 앞선다. 그러나 친선경기가 아닌 토너먼트 대회서 한국의 꿈을 꾸는 소년들의 승부욕이 다시 한번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 10bird@osen.co.kr
[사진] 전주=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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