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 '김정남 암살 현장' 쿠알라룸푸르 공항 가보니
체포 여성, 베트남 여권 소지… 도주 공범은 북한·베트남 국적
김정남, 김철 명의 北여권… "피습후 눈이 타는 듯한 고통 호소"
北대사관 직원들 부검 참관… 시신 인도 요구했지만 거부당해
 

15일(현지 시각)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제2청사(KLIA2) 3층. 김정남이 암살당한 체크인 카운터 로비에는 테러가 벌어진 곳임을 짐작하게 할 만한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여행 가방을 끄는 승객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분주하게 터미널을 오갔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공항 청사 내 곳곳에는 흰색 제복을 입은 경비 병력과 검은색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굳은 얼굴로 이용객들을 주시했다. 전날까지는 보이지 않던, 전투복에 소총을 든 경비 병력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대낮에 국제공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당황한 말레이시아 당국은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경찰과 경비원들은 기자의 질문에 "아무런 정보도 줄 수 없다고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만 말했다.

이곳은 말레이시아 국적 저가 항공사인 에어아시아가 전용 터미널로 쓰는 청사로 평소에 이용객이 많은 곳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 13일 오전 9시 15분쯤에는 5분 간격으로 이륙 비행기가 밀집해 있었다.

경찰의 발표와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13일 오전 3층 도착 층에서 내린 김정남은 5분 정도 걸어서 항공사 카운터 로비에 도착한 뒤 W열 모퉁이에 있는 셀프 체크인 키오스크에서 체크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신원 불명의 여성 2명이 김정남 뒤에서 접근해 낚아챈 뒤 독극물로 추정되는 물질로 그를 공격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독이 든 펜'이 이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김성규 기자
그래픽=김성규 기자

반면,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찰 관계자를 인용해 "김정남의 머리가 액체에 발린 것으로 보이는 천에 덮였다"고 보도했다. 현지 통신인 베르나마는 "액체를 묻힌 천으로 김정남 얼굴을 감쌌고, 김정남은 눈이 타는 듯한 고통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현장 CCTV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 천장에는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었다.

김정남은 공항 직원들에 의해 2층 진료소로 옮겨졌다가 다시 공항에서 30㎞쯤 떨어진 푸트라자야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 사망했다. 현지 경찰은 김정남이 사망 당시 1970년 6월 10일 평양 출생 김철(Kim Chol)이라는 이름으로 된 북한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사이 여성들은 1층 택시 승강장으로 내려가 각자 택시를 타고 달아났다. 현지 언론인 더스타가 15일 공개한 CCTV 영상에는 김정남을 독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 중 한 명이 영문으로 'LOL(Laughing out Loud·큰 소리로 웃는다는 뜻)'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흰색 티셔츠에 파란색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베트남 여권을 소지한 이 여성은 15일 오전 공항을 배회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이 여성은 경찰에서 남성 4명과 여성 2명 등 모두 6명이 범행을 했으며, 자신과 다른 여성이 범행을 하는 동안 남성 4명은 공항 내 식당에서 이를 지켜봤다고 진술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은 보도했다.

푸트라자야 병원에 안치됐던 김정남의 시신은 이날 오전 9시쯤 부검을 위해 쿠알라룸푸르 종합병원(HKL)으로 옮겨졌다. 부검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병원을 찾아 참관했다. 이날 오전 외교관 번호판을 단 차량 3대가 병원에 나타난 데 이어 오후 2시쯤에는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 전용 차량으로 알려진 검은색 승용차가 병원 정문 앞에 나타났다.

북한은 사건 직후 김정남의 시신 인도를 요구했지만, 말레이시아 당국은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슬랑오르주 경찰 파드질 아흐마트 국장은 "시신을 돌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부검이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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