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태영호 공사가 부인·자녀 등 가족과 함께 정치적 망명을 요청, 최근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통일부가 17일 밝혔다. 태 공사는 영국대사관에서 현학봉 대사에 이은 서열 두 번째로, 1997년 장승길 이집트 대사가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최고위급 탈북 외교관이다.

북한에게 영국대사관은 뉴욕 유엔대표부와 함께 가장 중요한 해외 공관 중의 하나다. 태 공사는 영국에만 4년, 다른 유럽 국가를 포함하면 10년 이상 이 지역에 주재하며 주로 북한 체제 홍보와 북 권력층 담당 업무를 해왔던 사람이다. 북의 최고 유럽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작년에도 영국 공연장을 찾은 김정은 친형 김정철 바로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여러 강연 등을 통해 "북한이 국민에게 교육 주택 의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에 대한 인식이 달려질 것"이라며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기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런 태 공사가 탈북 동기에 대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동경, 자녀들의 장래 문제 등을 들었다 한다. 김정은을 필두로 한 북 권력 집단이 공포정치로 아무리 내부 단속을 강화해도 속으로 점점 곪아가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북은 지난 1월 4차 핵실험, 2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으로 사상 가장 강력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자초했다. 김정은이 며칠 전 직접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고 자인했을 정도로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북 공관원들은 물론 해외에 체류 중인 노동자들까지도 북 권력층이 상납(上納)액을 오히려 높이는 데 따르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이것이 올 들어 고위급 탈북자들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넉 달 전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한 것도 이 흐름 속에서 나왔다 .

그동안 대북 제재에 대해 어느 정도 시간만 지나면 그 실효성을 깎아내리거나 냉소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 일각에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제재의 고삐가 죄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의 엘리트 중 엘리트이자 김정은 체제의 첨병(尖兵)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탈북했다는 것은 대북 제재에 가장 필요한 것이 인내심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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