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태양·인공폭포 작품으로 유명한 설치작가 올라퍼 엘리아슨]

테이트모던·뉴욕 이스트江 등 세계 곳곳에 '유사 자연' 선보여
휴대조명 '리틀 선' 아프리카 보급
"의견 달라도 포용하는 예술, 다르면 배척하는 정치에 교훈 줘"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47)의 이름엔 아버지가 깊게 새겨져 있다. 아버지 이름 '엘리아스'에 아들을 뜻하는 'son'이 붙어 엘리아슨이란 성을 얻었다. 아버지 이름을 아들 성에 붙이는 아이슬란드식 전통에 따른 작명이다. 아들은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아이슬란드 출신으로 코펜하겐에 이민 왔던 부모는 그가 어렸을 때 이혼했다. 요리사였던 아버지는 아이슬란드로 되돌아가 예술가가 됐다.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어요. 그림을 잘 그리면 그럴 것 같았죠."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 크레파스를 끼고 살았던 아이는 훗날 무딘 감각을 깨우는 시(詩)적인 설치 작품으로 세계인의 인정을 받았다.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선 거울과 노란 불빛으로 실내에 인공 태양(2003년 날씨 프로젝트)을 만들었다. 미국 뉴욕 이스트강에는 대형 인공폭포(2008년)를 설치했다. 2012년부턴 태양열을 집적해 휴대용으로 쓸 수 있는 해바라기 모양 LED 조명 '리틀 선(Little Sun)'을 만들어 전기가 부족한 아프리카 오지에 보급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유사(類似) 자연'을 창조한 작가는 "이번엔 북한에 '작은 태양'을 띄우고 싶다"고 희망했다. 지난 28일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의 강연 참석차 방한한 그를 만났다.

―관객의 참여가 작품의 중요한 요소인 듯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무렵 베를린에 있었다. 격변의 현장을 경험하면서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쌓은 아래로부터의(bottom-up) 혁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그걸 보며 처음부터 작품 일부에라도 관객을 참여시키자고 생각했다. 신체 참여, 경험이 내 작품에서 중요한 이유다."

“만화경 안에 있는 것 같지 않나요? 우리가 인지하는 공간의 경계가 어디까지일까 시험해 봤어요.” 올라퍼 엘리아슨이 삼성미술관 리움 계단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중력의 계단’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은 조명과 거울로 태양계를 표현했다. /이태경 기자
“만화경 안에 있는 것 같지 않나요? 우리가 인지하는 공간의 경계가 어디까지일까 시험해 봤어요.” 올라퍼 엘리아슨이 삼성미술관 리움 계단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중력의 계단’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은 조명과 거울로 태양계를 표현했다. /이태경 기자

―이 시대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가.

"같은 그림을 보고 좋다는 사람도 있고 싫다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경험을 나눈다(sharing)는 것이다. 문화(예술)가 정치와 다른 부분이다. 정치는 동의하지 않으면 배척(exclusion)한다. 반면 문화는 포용(inclusion)이 미덕인 영역이다. 신뢰를 배울 수 있다. 구성원 사이 갈등과 반목이 심한 사회에 있어 예술이 중요한 이유다."

―'리틀 선' 프로젝트도 그 일환인가.

"리틀 선은 손안의 작은 발전소이자, 희망이다. 또 '파워 분산'을 의미한다. 영어로 파워는 '전력'이면서 '권력'이다. 둘이 동음이의어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전력을 나눠주고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사람들과 리틀 선을 풍선에 붙여 북한에 보내고 싶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고립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전기가 없는 곳에서도 태양열을 집적해 쓸 수 있는 휴대용 조명 ‘리틀 선’. /올라퍼 엘리아슨 제공
전기가 없는 곳에서도 태양열을 집적해 쓸 수 있는 휴대용 조명 ‘리틀 선’. /올라퍼 엘리아슨 제공

―예술로 자연을 통역하는 것 같다.

"아버지를 보러 방학 때면 아이슬란드에 갔다. 자연에 대한 정의를 바꿔 놓는 곳이다. 여름엔 백야(白夜), 겨울엔 흑야(黑夜)가 지속된다. 나무 한 그루 없고, 빙산이 둥둥 떠다닌다. 내게 아이슬란드는 친숙한 세상의 끝이자, 새로운 세상의 시작 같은 곳이다. 미지의 세계와 이미 아는 세계 사이의 경계선이랄까. 내 작업은 아이슬란드의 자연에서 경험한 감각을 도시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실험하는 것이다."

―리움에 설치된 작품 '중력의 계단'은 거울을 설치해 우주 공간을 만들었다.

"미술관 공간에도 경중(輕重)의 서열이 존재한다. 전시실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단, 탕비실, 옷 보관소 같은 실용적인 공간은 중요하지 않은 공간으로 치부된다. 계단은 전시장 사이를 오갈 때의 동선이다. 이미 본 작품을 곱씹으면서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지나가는 공간이다. 관람객에게 관람의 경험과 기억이 옮아가는 과정을 묻고 싶었다. 벽과 천장에 거울을 달아 오르내리며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게 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예술이란?

"사람들이 미처 예상치 못한 자기 안의 감정을 꺼내게끔 하는 것. 결국 스스로를 보게 하는 것."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